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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의병' 중심에 ‘영암 의병’이 있었다영암 의병들 ‘호남의소’ 핵심 역할 담당
의병성지 국사봉, 유적지화·연구작업 시급
29일 ‘영암 의병사 연구’ 세미나서 지적
29일 오후 2시 영암군청 왕인실에서 영암문화원 주관 ‘영암 의병사 연구 세미나’가 각계에서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영암중학교 학생들이 식전행사로 ‘독도는 우리땅’과 ‘신독립군가’를 불렀다.

한말 ‘호남 의병’의 중심에 ‘영암 의병’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29일 오후 2시 영암군청 왕인실에서 영암문화원 주관으로 개최된 ‘영암 의병사 연구 세미나’에서 제기됐다.

이날 전동평 군수, 조정기 군의장, 도·군의원, 기관사회단체장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영암 의병사 연구’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박해현 초당대 교수(‘한말 영암의병’)와 조복전 영암역사연구회장(‘임진의병과 영암’)은 주제 발표자로 나서 “의병 전쟁이 독립전쟁으로 본격화될 때 ‘영암 의병’들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실제, 시종출신 박평남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호남의소’가 대표적인 사례로, ‘전남 제일 의병장’ 심남일 의병이 가담한 ‘호남의소’는 전남 중·남부 지역을 장악한 대규모 의병부대였으며, 영암 의병이 ‘호남의소’의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즉, 1908년부터 1909년까지 전남지역은 서부의 전해산, 중·남부의 심남일, 보성의 안규홍 의병장들이 중심이 되어 일본군과 치열한 독립전쟁이 전개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심남일이 이끄는 ‘호남의소’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의병부대를 거느리며, 가장 넓은 지역에서 일본군과 물러서지 않은 전쟁을 치렀고 심남일이 지휘한 ‘호남의소’가 활발히 움직일 때, ‘호남의병’도 가장 빛났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호남의소’의 의병부대는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음에도 2년 넘게 전쟁을 지속했는데, 이처럼 의병들의 빛나는 항쟁에는 영암인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도움이 뒷받침됐다. 하지만 ‘대한제국 의병사’에 빛나는 ‘영암 의병’의 이름이 있지만 자료 부족과 함께 역사에서 거의 잊혀져 가고 있어 체계적인 연구작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금정면의 국사봉은 ‘호남의소’의 사령부였으며, 국사봉을 근거지로 남평·능주·보성·장흥·강진·해남을 아우르는 의병 전쟁이 치열하게 이어졌던 곳으로, 최근 전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호남의병 역사공원’의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실례로, 일본군이 전개한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의 경우 처음에는 1909년 9월1일부터 10월10일까지 40일 일정으로 추진되었다가 15일 연장되어 총 55일간 수행되었는데 국사봉이 마지막 작전 지역이었고 작전수행이 보름이나 늦어진 것도 국사봉에서 활동했던 의병들의 저항이 심했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토벌작전’ 기간 동안 의병들의 피해상황을 일본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전사자 420명, 체포자(자수 포함) 1천687명 등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농소·용천·사촌·이암, 고인동, 진터골, 칠성동 등의 국사봉 전승지와 의병들의 활동상을 살피고, 영암 의병들의 영웅담을 함께 전하고 있는 국사봉의 유적지 정화사업과 함께 의병 활동을 연결짓는 구체적인 연구작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박해현 교수는 특히 ‘영암 의병’은 ‘호남 의병’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병의 산실이라고 주장했다.

도포출신 양달사가 조선시대 ‘최초 의병장’의 역사를 썼고, 임진왜란 때 수많은 영암 출신들이 국난극복에 몸을 던졌는데 그 중에 서호면의 전몽성·몽진 형제가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

또 금정출신 양방매 여사도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활약하는 등 각종 자료를 토대로 확인된 한말 영암출신 의병은 190명에 이르고,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결성한 의병장도 20명 남짓에 달하는 등 한 지역에서 이처럼 수많은 의병장을 배출한 곳은 매우 보기 드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같은 ‘영암 의병’의 뜨거운 피는, 3·1운동·영보 농민항일운동 등 일제강점기 격렬한 독립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박해현 교수는 밝혔다.

박해현 교수는 “영암 지역민들은 의병전쟁 때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가 있음에도 이후의 독립운동에도 가장 앞섰다. 올곧음을 지향한 ‘의향, 영암’의 전통이 뿌리 내려져 있음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박해현 교수의 ‘한말 영암의병’, 조복전 회장의 ‘임진의병과 영암’을 주제로 한 발표와 오수열 조선대 명예교수와 이종범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의 토론이 있었다. 김한남 문화원장은 “이번 세미나는 그동안 소홀히 취급된 영암의병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영암의병들의 실체를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문배근 기자  mbg1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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