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 영 나주시 공산면 복용리

모든 사람들의 꿈은 한결같다. 그 꿈은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인정받고 나이 들어서 이웃과 넉넉한 인심으로 노후를 즐기는 일일 것이다. 바로 시종면에 사시는 광제(廣齊) 황인헌(黃仁憲, 81)씨가 그분이다. 평생 고향을 지킨 농사꾼으로 농촌에 몸 바쳤던 그분은 매일 새벽 6시에 기상하여 석해 들녘 삼포천 제방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아 보천교까지 질주했다가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세브란스병원 이덕철 교수의 얘기처럼 80~90대의 건강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60~70대에 만들어지고, 60~70대의 건강은 50대부터 쌓여서 결정된다고 하는 말이 이분께 실감나는 대목이다.

필자가 이 분과 알게 된 사연은 이렇다. 한때 영암군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했다기 보다 고향집 나주 공산면 복용리 앞 석해 들녘이 있는데 이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는 삼포천은 영암-나주 양 시군 경계로 석해 들녘이 연접되어 있고 들녘 건너편 광재동네도 훤히 건너다 보인다. 이렇듯 지연관계가 한 몫을 했는지 이야기가 뭉텅이로 남아 있다. 옛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가 어릴 적 겪었던 향수가 짙게 풍겨온다. 추수가 끝나면 삼포천 수량이 적어진 틈새를 이용하여 시종, 공산, 반남 사람들과 함께 가래로 가물치, 숭어 등 물고기를 잡던 일, 서울·광주에 가려면 공산면 삼쟁이 산길고개를 넘어 왕곡면을 거쳐 영산포까지 비포장 도로를 걸어 영산포역에서 기차를 탔던 일, 목포를 가기 위해 석해들, 종남들을 거쳐 시종 남해당 포구에서 여객선을 탓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그렇지만 산타이고 순례길도 일본 올레길도 좋지만 고향길 만한 게 또 있을까. 그래 어린시절도 행복했다고 자위해 본다. 그래서인지 취향이나 지역현안에 대한 관심도도 나와 비슷한 편이다.

우리들의 관심 사항들을 열거하면 최근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에서 발굴된 보도다. 마한최고 권력자의 고분으로 확인된 내용들이다. 이와 관련 전라남도에서 추진 중인 영산강유역마한문화권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전라남도 뿌리를 찾는 역사적 행보가 시작되는 즈음 지역에서 한때 주장했던 마한박물관 위치 선정에 관심이 쏠린다. 따라서 마한축제도 다른 각도에서 중히 보여진다.

마한은 54개 부족국가 연맹체로 6세기 700년간 존속된 위대한 역사를 가진 삼한 중 가장 세력이 컸었고, 역사기록이 얼마 남지 않은 터에 쌍무덤에서 6기의 매장시설과 출토된 매장물 등에서 확인된 쾌거였다. 때마침 마한과 가야중심 고대역사문화권 특별법안이 국회에 상정 계류중에 있기에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또 다른 사안으로 국가가 시행했던 영산강유역간척지 개발로 바닷길이 막혀 버린 관계로 영암을 비롯 서남부지역 도민들의 교통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존도로 보다 서울과 수도권 광주 등지에 접근이 용이한 시종면에서 나주 문평IC로 연결되는 지방도 801호선과 지방도 825호선에 대해 정비를 요청했지만 특히 지방도 801호선 상의 공산~다시간 교량 미설치로 도로가 끊겨져 수십년째 방치되고 있는 꼴을 보면 초등학생이라도 참지 못하고 행동하려 할 것 같다.

또 앞서 언급된 석해들은 원래 수해상습지였다. 흔히 여름철 장마기에는 온 들녘이 물바다가 돼 논에 심어놓은 벼 이삭까지 덮쳐버려 벼농사를 접을 때 설움도 많았다. 이런 사유로 정부의 국고보조금을 받아 전라남도에서 하천 개수공사를 마쳤다. 그런데 하천구역 내를 들여다보면 정말 심각하다. 수해상습지 들녘이 이젠 되살아나 잃었던 벼 수확은 회수하고 있지만 장마철 홍수시 빗물들이 하천으로 모아져 만수가 되어 흐를 때 제방유실에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고수부지에 농작물 경작행위가 하천의 유속(흐름)을 저해할 뿐 아니라 농사를 짓기 위해 파헤쳐진 흙들이 하류에 유출돼 준설의 문제가 생기고 있다. 준설 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하천고수 부지에 절대 경작해선 안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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