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병의 구국충혼을 기리고 의병역사를 정립하기 위한 ‘호남의병 역사공원’이 전남도 차원에서 추진된다고 한다. 비록, 늦었지만 매우 뜻깊은 사업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영암군도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의 역사적 뜻깊은 의미를 담아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정부에서도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꾸리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100년 전 싹튼 한국의 근대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해방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겼지만, 친일 잔재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분단은 여전하고 냉전의 기류도 걷히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전남도의 ‘호남의병 역사공원’ 조성사업은 의병들의 충혼을 기리고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나름 의미 있는 사업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호남은 임진왜란에서부터 3·1운동 이전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의병이 외세의 침탈에 맞서 싸웠음에도 유적·사료 등의 조사·연구가 부족한 형편이라는 점에서도 이번 역사공원 조성사업은 매우 가치가 높다할 것이다.

그런데 사업 대상지가 역사적 상징성·접근성·부지 확보와 개발 용이성·주변 관광지와 연계성 등 다양하고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용역으로 확정하고 시·군 공모를 거쳐 선정하도록 돼 있다. 이러한 기준을 감안하면 영암군은 전남도내 22개 시·군 가운데 손꼽히는 지역으로 지목되고 있다.

역사적 상징성만 보더라도 그렇다. 을묘왜변 때를 거슬러 올라가 관군이 왜구의 침입에 대적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 도포의 양달사 형제는 영암읍성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구를 격퇴시켜 국란을 평정했다. 임진왜란 때는 서호의 전몽성·몽진 형제가 고경명 장군 휘하에서 활약하다 순국했다. 대한제국 말기에는 금정 국사봉을 중심으로 호남의병들이 가장 최후까지 일본에 항전했는데 당시 금정출신 양방매는 강무경의 아내로 남편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3.1운동 때는 1천여 명의 군민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이들 중 30여명이 징역을 살거나 태형을 받았다. 1930년대 초에는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은 영암농민항쟁이 영보 형제봉에서 일어나 70여명이 법정에 서기도 했다. 월출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이러한 영암 사람들의 기개는 1980년 5.18민주항쟁 때도 이어져 의절의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남도에서 추진하는 ‘호남의병 역사공원’이 당연히 영암에 들어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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