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호 신북면 행정리生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 민변 광주전남지부 지부장 전라남도 행정심판위원ㆍ소청심사위원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세한도(歲寒圖)는 조선후기의 학자 추사(秋史) 김정희가 제주도에 위리안치 유배된 지 5년째 되는 해에 그린 그림이다. 한 겨울 엄동설한에 추사는 세한도를 그려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하였다. 세한도는 전문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선비가 그린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 몇 그루가 한 겨울 추위 속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유배가기 전이나 유배간 뒤나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을 대하고 있는 이상적의 행동을 보면서 김정희는 문득 논어 자한(子罕)편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구절이었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겨울이 되어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김정희 자신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친구와 우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사기 백이열전에서 사마천도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날씨가 추워져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 세상이 혼탁할수록 청렴한 선비와 진정성 있는 마음이 눈에 띄는 법이라고 강조하였다. 부귀를 중하게 여기는 속인의 처사와 부귀를 가볍게 여기는 청렴한 선비의 처사는 그 대비가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김정희는 이상적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바다 멀리 유배된 신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적의 뒤를 봐줄 수도 없었고, 그에게 돈으로 보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그림을 마친 김정희는 ‘세한도’라는 그림의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蕅船是賞)’이라고 썼다.

우선(蕅船)은 이상적의 호(號)였다. ‘이상적은 감상 하게나!’라는 의미였다. 그림을 마친 김정희는 마지막으로 인장을 하나 찍었다.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인장이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후한 광무제(光武帝) 때 신하 가운데 송홍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청렴결백할 뿐 아니라 유능하여 황제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 무렵 광무제의 딸인 호양 공주가 남편을 잃고 홀로 되었다. 이에 광무제는 자신이 늘 보아왔던 송홍의 인물됨에 이끌려 그를 사위로 삼으려는 뜻을 품었다. 물론 공주 또한 그를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송홍의 의사를 확인하기로 하고, 광무제는 공주를 병풍 뒤에 숨게한 후 송홍을 불러들여 “옛말에 이르기를 고귀한 사람은 남과 사귀기 쉽고, 부유한 여자는 누구든 데려가려 한다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송홍은 “어려울 때 사귄 우정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조강지처는 절대 버려서 안 된다고 생각하옵니다.(貧賤之交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을 들은 황제 광무제는 송홍이란 인물이 부인을 버리고 공주를 택할 리가 없음을 깨닫고 공주에게도 송홍을 포기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비롯된 표현이 바로 빈천지교 또는 빈천지교 불가망(貧賤之交 不可忘)이라는 고사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중국 후한시대의 송홍의 고사를 떠올리면서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기쁘고 즐거울 때 보다는 어렵고 힘든 시절을 함께 버티고 위로해준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좋을 때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나쁠 때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부인하고 싶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과 인간관계의 세태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정승 집의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쳐나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는 말이 있을까 싶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를 문전성시, 문전작라(門前成市, 門前雀羅)라고 표현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고시생 시절 어려움을 함께 나눴던 진정성 있는 벗들을 현재도 잊을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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