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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영웅 허봉익 육군대위를 기리며
전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무더운 여름이었다. 몇 십 년 만의 무더위라는 타이틀을 당당하게 달고 모두를 힘들게 했던 그 여름이 어느새 지나가고 있다. 무더위에 대한 기억이 그리 유쾌한 기억도 아니니 빨리 잊어서 나쁠 것이야 없겠지만, 몇 달 후 추운 계절이 오면 여름이 아주 약간은 그리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반되는 기억들이 자연스레 떠오르듯이, 지금의 평화로운 상황에서 과거의 치열함을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지난 광복절과 같은 각종 기념일을 통해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말이다. 8월이 가기 전, 6.25전쟁영웅 허봉익 육군 대위를 소개하고자 한다.

허봉익 육군 대위가 활약했던 안동지구 전투를 간단히 설명하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기 직전에 국군 제8사단과 수도사단 1연대가 안동지역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제8사단 소속 일부 병력의 침공을 4일간 저지한 방어전투이다.

7월 31일 새벽 북한군은 전차를 선두로 대대적인 공격을 하였으며, 이 무렵 우리 육군본부는 낙동강 방어선 형성 계획에 따라 안동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낙동강 전선으로 철수작전을 진행하던 중 제16연대는 북한군 1개 연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철수명령을 뒤늦게 받았다.

이에 따라 우리 연대는 북한군에게 포위되어 각개로 철수하였고, 포위망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연대병력 중 장교 21명과 병사 814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손실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제3대대 3중대장 허봉익 대위는 임전무퇴의 정신을 발휘하여 안동을 점령하려던 북한군 2개 대대 병력과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그가 지휘하는 제3중대는 북한군 1개 중대를 격멸하고 압축된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북한군의 포격과 우리군의 병력이 부족하여 허봉익 대위는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1950년 8월 2일 안동에서 전사한 그의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54년에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최근 연일 내리는 비가 무더운 여름을 조금씩 씻어 내리고 있지만, 불과 몇 주 전까지 있었던 한여름 무더위에도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던 허봉익 육군 대위의 업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박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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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암신문 2018-10-07 17:54:11

    영암신문 한편에는 좌익 사회주의 계열의 재야 역사학자의 기고문으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좌익소탕을 학살등으로 매도하고, 동학을 혁명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는 반면, 이 한편에는 젊은 보훈처 직원의 625 전사를 함께 싣고 있다.

    625 전사만큼, 북한 공산군의 비호아래 토착 좌익세력의 양민학살에 대해서는 왜 재야사학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는가? 하긴 한국에서 사학자들 하면 다 빨간물 안든 사람 보기가 드물지..... 중국 사랑 북한 사항에 정말 안쓰럽다. 동학운동이 어떻게 당시 조선의 운명을 바꾸었는지 국제정세에 까막눈이던 당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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