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서 낳고 영보에서 자람 전 KBS광주총국 아나운서 부장 전 호남대학교 초빙교수 국제로타리3710지구 사무총장

‘돌아가다’는 ‘죽다’의 높임 말이다. 돌아가다, 돌아가셨다... 어디로 가시는 것인가. 죽어서 묻히는 무덤 형태는 자기가 태어날 때 만삭 어머님의 모양 그대로이다. 해산달이 다 찼을 때의 모양이 무덤과 같다. 죽어서 다시 만석이던 어머니의 배를 닮은 무덤으로 돌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 ‘한 살’을 쳐준다. 태어나면서 부터 생명을 인정해주는 서양과는 다르다. 우리는 생명이 잉태했을 때 남녀 성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다. 태내에서 지낸 열 달(40주간)을 1년으로 쳐서 한 살을 인정해 준다. 서양보다는 훨씬 생명존중 의식이 높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가 결혼을 해도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 자기 성과 이름을 그대로 지킨다. 그러나 서양은 다르다.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이름은 그대로 지키더라도 성은 바뀐다. 빌 클린턴의 영부인은 힐러리 클린턴이고, 일본 총리 아베신조(安倍晋三)의 영부인은 아베 아키에(安倍昭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의 영부인은 ‘김정숙’ 여사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택호’(宅號)는 있어도 ‘댁호’(宅號)는 없다. 댁내(宅內)나 댁사람은 있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대로는 어른들이 ‘댁호’라고 말했다.

그러나 ‘댁호’는 없다. ‘-댁’은 부인의 친정 동네 이름 밑에 붙여서 그 곳에서 온 부인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칭호이다.

택호는 벼슬 이름이나, 장가 든 곳의 동네 이름이나 지명을 붙여 그 사람의 집을 부르는 이름이다. 최 진사댁, 김 교장댁, 목포댁 따위이다.

택호는 일반적으로 귀속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남자가 장가가서 처가살이하는 것을 ‘남귀여가(男歸女家)’라고 하였고, 여자가 시집가서 시집에서 사는 것을 ‘여귀남가(女歸男家)’라고 했던 것처럼 귀속 칭호의 잔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택호는 결혼한 부인이 이전에 살았던 곳을 따라 짓는 것 외에 성씨를 따라 짓기도 했다. 우리 이모님은 밀양 김씨이신데 ‘밀양댁’이었다. 이것은 자기 성씨를 잊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 또한 여성의 존재를 높이 산 것이라고 본다.

우리 어머님은 ‘서동댁’이었다. 서쪽(위 가릿굴)에서 동쪽(구림-아랫사우)으로 시집을 왔기에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동네 이름을 붙여서 짓는 것 보다는 포괄적 의미가 큰 것 같다.

시집간 여인이 자기 친정에 가면 그 새댁에게는 시댁의 성씨를 붙여 ‘최실(室)’ ‘박실’로 부른다. 이는 ‘너는 이제 친정 사람이 아니라 시댁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리라. 남자는 처가에 가면 자기의 성씨를 따라 ‘최서방’ ‘박서방’으로 불러준다.

택호는 여자가 ‘~댁’인데 반해 남자(남편)에게는 ‘~양반’을 붙여 부른다. 연동댁이면 ‘연동양반’이고 구름(구림)댁이면 ‘구름양반’이 된다. 택호에 항렬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숙질간이면 ‘연동아짐’ ‘연동질부’라 하고, 조손간이면 ‘연동손(孫)’‘연동 할아버지’ ‘연동할머니’가 된다.

택호에는 우리 옛 선인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출신지 이름을 통하여 마을에 새로 혼입한 새댁이 어느 지역의 어떤 가문 사람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성에게 있어 택호를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가문의 구성원이 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과거 친정에서 사용했던 이름 대신 새 이름을 받음으로써 과거에 소속되었던 집단에서 새로운 집단의 구성원으로 이동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대로 친정에 대해서는 새로 다른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자꾸만 잊혀져가는 우리 고향에서 불렀던 댁호(택호보다 더 익숙한 말)를 떠올린 것은, 댁호를 생각하니 그 이름 뒤에 여러 가지 생각이 뒤따라오기에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보았다.

(만삭의 모습으로)돌아가셨다 - 태어나면 한 살 - 결혼해도 변하지 않은 어머니의 성명 - 출신지나 본관을 잊지 않게 해주는 댁호의 의미에서 어머니와 고향의 옛 정을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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