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서 낳고 영보에서 자람 전 KBS광주총국 아나운서 부장 전 호남대학교 초빙교수 국제로타리3710지구 사무총장

해가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도 하순이다. 올해의 절반이 지났다. 세월은 이처럼 유수같이 흘러간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지내다가 임종이 다가와서야 허둥거리며 후회한다.

지난 달에는 숲과 새와 나무를 사랑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별세와 고인의 장례식이 세간의 화제였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총수의 장례가 수목장으로 치러지는 전례가 없었고, 그 보다는 고인이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겸손하고 소탈한 경영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고인은 말단 직원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했다. 작은 약속을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고인은 또한 절제와 겸손함의 미덕을 실천했다. 비싼 술도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항상 바른 몸가짐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았는데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소탈했던 고인의 장례가 떠들썩하게 과시하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되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을 남기셨다.

우리는 늘 친척이나 지인의 느닷없는 죽음에 놀라게 된다. 부고 가운데에는 탈 없이 지내다 편안히 영면하셨다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여러 해를 병원(요즘은 요양원)에서 지내다 돌아가셨다는 분도 있고... 사연은 여러 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죽음은 어떤가. 얼마 전 누군가가 어느 60대의 장례식에 다녀왔던 얘기이다. 발인을 마치고 화장장으로 가는 길에 운구버스 안에서 세상을 떠난 고인의 영상을 보았다.

“이렇게 비도 오는 궂은 날, 저의 장례식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문오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고 한다. 비 오는 날까지 맞췄다는 건 날씨에 맞춰 영상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는 치밀함으로 보인다. 놀랍고 감동적인 예화이다.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 마무리를 잘 해놓는 것이 필요하다. 죽어서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부친상을 치른 40대 초반의 후배는 아버지를 3일장으로 모셨다. 아버지께 올리는 마지막 효도라는 생각에 남들처럼 많은 사람에게 부고를 보냈다. 하지만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말이 3일이지 하루 반 사이에 조문객을 받고 술 한 잔씩 대접하다 보니 정작 안치실의 아버지 얼굴은 기억에 없다. 입관예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조차도 모르겠다고 후회한다. 밤낮으로 손님을 받아야 하니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릴 시간조차 빼앗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소수의 지인만 모여 뜻깊은 예식을 올리는 간소한 장례식을 삼우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요즘 장례식장의 조문이 사실은 부의 봉투를 내고 ‘얼굴도장’ 찍는 절차가 아닌가. 고인의 추모와 유족의 위로는 가까이 있지 않은 꼴이다. 간소한 장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병원 장례식장에 가면 망자(亡者)는 없다. 시신도 빈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진 곳 안치실 냉동고에 있다. 떠나간 사람의 모습을 보거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문가들 말에 따르면 삼베옷은 우리나라 전통이 아니라고 한다. 장례 전문가들은 ‘일제의 잔재’라고 한다. 완장도 그렇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평소 입던 옷 중에서 가장 뜻깊고 멋진 옷을 수의로 입었다. 여성들의 수의는 혼례복, 남성들은 관복이 제격이란다. 수의 대신 평상복을 입는 게 우리 전통이기도 하고 화장률이 80% 이상인 지금의 세대와도 맞다고 본다.

홀로 남아서 사후에 안절부절 못할 자녀를 위한다면 ‘장례 희망(의향서)’을 미리 남겨 놓을 일이다. 장례는 어디서 치를까, 부고는 어디까지, 시신처리 방식, 장례의식(영결식), 장지와 장묘 방식도 알려주고 마음에 드는 영정사진도 지정해두면 좋을 것이다. 유품, 재산, 채무, 보험, 가계(家系) 등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죽음은 겨울옷을 입다가 봄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감사하며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자. 죽음이 축복이 되려면 결혼식처럼 미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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