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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에 이룬 어린 시절의 꿈 ‘서예’■ 서예가 두암 한봉희씨
대한민국 비림서예대전 종합대상 영예
  • 박명준 시민기자=미암
  • 승인 2018.05.2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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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암 한봉희(74·미암면 두억리) 서예작가가 2018년 5월 16일 열린 제19회 대한민국 비림(碑林)서예대전에서 ‘精神一到何事不成’ 작품으로 종합대상을 수상해 화제다.

미암농협(현 서영암농협) 조합장을 지낸 바 있는 그는 2015년 39회 한국문화 미술대전에서 은상, 제51회 국제문화 미술대전에서 금상, 2017년에는 한국문화예술연구회 찬조작가에 선정되는 등 서예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가 늦은 나이에 서예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인 한공숙(군서면) 한의사와 이경헌 서당에서 배웠던 서예의 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 6·25 한국전쟁 전후에 형님과 아버님을 여의고 한의학과 한학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영향도 컸다.

그가 처음으로 서예를 접한 것은 7살 겨울에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누나의 손에 이끌려 이경헌 서당에 간 것이 시작이었다. 또 할아버지는 그를 자신의 무릎 앞에 앉히고 붓을 잡도록 하고 큰 손으로 그의 고사리 손을 움켜잡고 ‘붓글씨는 이렇게 쓰는 거다’면서 종이에 첫 줄을 함께 쓰며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나는 2남 4녀 중 막둥이로 전쟁 전, 형님을 잃고 전후엔 아버지를 잃어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할아버지에게서 자랐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80세에 돌아가시자 대대로 이어온 한의학과 한학을 초등학교 다니던 때라 너무 어려 잇지 못하고 이후 농업에 일찍 투신했다. 그러다가 35세에 미암농협에 입사했으며 직원부터 조합장까지 30여년 동안 일에 매달리면서 서예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린 시절부터 가져왔던 서예의 꿈이 항상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미암농협 조합장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2013년 학산면 독천에 문을 연 서예학원 학연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이제부터라도 다시 서예공부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수강을 했다. 당시 20여명이 추담 김길환 선생의 지도로 왕휘지 필체를 기본으로 해서, 행초서, 예서, 전서 등 다양한 필체를 배우고 있었다. 영암향교의 경서학원으로 오라는 회원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학연회에 쭉 머물면서 열심히 먹을 갈며 김 선생의 지도 아래 자신의 길을 갔다.

그는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한의학과 한학을 해왔는데 힘겹게 흘러온 가족사로 인해 나는 못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김길환 선생에게 깊이 있는 서예를 배운 것이 좋은 성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면서 “더욱 정진해 나만의 필체를 완성해 좋은 작품을 써내려 가겠다”고 말했다.  

이계열 미암면 노인회장은 “내가 열일곱 살 때 일곱 살이었던 한봉호 서예가의 작고 귀여운 손을 잡고 서당으로 가던 기억이 난다”면서 “늦은 나이지만 서예가로 빛나고 있는 모습에 더욱 빛나기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이번 비림종합대상작 ‘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일도하사불성)’은 충남 예산군에 있는 조선시대 서예 대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 생가주변의 비림공원에 2m 높이의 큰 바위에 새겨져 사람들이 관람토록 영구 보존된다.

한봉희 서예작가는 미암면 두억리에서 태어나 면소재지 미중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미암농협 조합장, 미암면 유도회장을 역임했으며 현 서영암농협 원로청년회 상임부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박명준 시민기자=미암  yasin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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