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전 광주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성당에 미사참례를 갔다. 염주골은 아직 곤히 잠들어 있다. 새벽 공기가 한층 상긋하다. 아내와 함께한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엊그제까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흐드러지게 꽃을 선물했던 학교주변 벚나무의 새순은 귀여운 손녀의 손처럼 곱기만 하다. 지붕위의 이슬 머금고 덩그렇게 선 십자가가 길을 밝힌다. 화단의 나무들 사이에서 환한 미소로 성모님이 우리를 반기신다. 여신자들의 머리에 쓴 미사포가 배꽃처럼 정갈하다. 은은히 울러 퍼지는 시작 성가가 마음을 일깨우며 복음이 선포된다. 맛깔스런 신부님의 강론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룩셈부르크의 한 마을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로 어느 날, 산림보호 감시대장이 정육점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 부인이 가게로 들어왔단다. 그녀는 겨우 들릴 듯 말 듯, “저어, 고기를 조금 얻으려고 왔는데…, 고기 값을 드릴 형편이 못되어…, 그러나 당신을 위해 미사참례를 하겠습니다.” 그들은 종교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면전에서 야박하게 거절하기가 곤란해, “그래요, 저를 위해 미사참례를 하고 다시 가게에 들르시구려, 미사의 값만큼 고기를 드리도록 하지요.”하고 반농담조로 말했다.

부인은 미사참례를 하고 다시 정육점에 들렸다. “정말 저를 위해 미사참례를 하셨나요?” 부인이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당신을 위해 미사참례를 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정육점 주인은 별 희한한 일을 다 겪는다고 중얼거리며 저울의 한 쪽에 부인이 내민 종이쪽지를 올려놓고, 다른 한 쪽에는 고기 한 점을 올려놓았는데 저울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

처음에 부인의 말을 듣고 비웃었던 두 사람은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큰 고기 덩어리를 올려놓아도 저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혹시 저울이 고장난 것이 아닌가 하고 살폈으나 이상이 없었다. 그는 약간 빈정대는 말투로 “부인, 저울이 꼼짝도 하지 않으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요?”라고 말했다. 양 다리를 겹쳐 올려놓아도 저울은 처음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정육점 주인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부인을 경멸했던 일을 깊이 후회하며 정중하게 부인에게 사과를 했다. 이제라도 신앙을 가져야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부인! 앞으로 부인이 원하시는 만큼의 고기를 매일 선물하겠습니다.”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한편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산림 감시대장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신자가 된 것은 물론이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였다. 아버지의 깊은 신앙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그의 두 아들은 각각 예수회와 예수 성심회의 사제가 되었다. 산림 감시대장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두 아들에게 ‘매일 하느님께 미사를 정성스럽게 봉헌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행여 게으름으로 인하여 미사를 집전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라고 유언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산림 감시대장이 신앙심을 갖게 된 계기처럼 우리 가족들도 어머님의 깊은 신심을 본받아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내 어머님은 참 그리스도를 믿으시다가 2000년 겨울,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며칠 지나면 어버이날이 돌아오지만 그리운 어머님을 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제대로 효도 한 번 못해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목이 멘다. 갓 스물에 혼인해 신혼의 단꿈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핏덩인 필자만을 외롭게 남기시고 죄 없이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신 내 아버님, 지아비 잃은 불쌍한 내 어머님, 

그 시절에는 반상(班常)의 정도가 혼인의 무게였다고나 할까? 외가와는 기울지 않는 무게가 있기는 했던지, 오랜만에 만나신 외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문중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모르셨지, 청상의 내 어머님 처지는 들먹이지 않으셨다. 가문의 굴레에 꽁꽁 묶어 두셨던 것인가? 내가 성인이 되어 어머님 개가(改嫁)를 말씀드렸다가 혼줄 나게 꾸중들은 뒤로는 다시는 거론치 않았었다. 

자식의 앞날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정절을 지키신 고귀한 어머님의 희생과 고초의 은덕으로 지금의 내가 있고 행복한 우리 가정이 생겼지만 잴 수 없는 그 무게 때문에 억눌렸던 모정을 생각해 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감사하고, 고마우신 어머님…,

아르키메데스가 눈으로 측정할 수 없었던 귀금속의 순도를 계측하는데 성공했으나 사람의 마음이나 미사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한한 가치의 무게를 측정하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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