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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내 바라보며 민족의 평화 기원현의송 북한농촌 방문기<2>

옥류관 냉면

천덕리에서 평양으로 돌아와 옥류관 식당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북한 주민들이 줄 지어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2층으로 안내 되었다. 북한주민과 우리를 격리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다. 으리으리할 정도로 호화로운 홀로 보인다. 정면에는 금강산 그림이 걸려 있다. 당 고위층의 연회 장소와 외국인 접대 장소로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대동강 기슭 옥류바위 위에 세워진 2층 한옥인 옥류관은 지난 1960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식당이다. 평양냉면을 비롯해 평양온면 대동강 숭어국, 송어회 등으로 유명하다.

특히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옥류관 냉면은 메밀로 반죽한 면이 남한의 냉면에 비해 부드럽고 육수 맛도 담백한 것이 특징으로, 지난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도 방북 둘째 날 이곳을 방문하였다.

본관을 비롯해 88년 9월 확장된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관의 연건축 면적은 5천800㎡, 좌석수는 2천200석이며 별관의 총건축 면적은 7천여㎡이다.

본관 1층에는 100여 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 2개의 식당과 30~40석 규모의 연회장, 8~15석의 작은 방 6개 등 30여개의 중소 연회장이 마련돼 있었다. 2층에는 600여 석의 대연회장이 들어서 있다. 별관에도 대중 식사실, 가족 식사실, 연회장, 그리고 대동강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야외식당이 있다. 별관에는 현대적 주방시설을 갖추고 있어 한번에 1천400여 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오후에 평양 시내에 있는 칠골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성경책도 있고 분위기는 훌륭했다. 남북한의 한민족이 평화롭게 함께 사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예배를 드렸다. 통성으로 논물로 기도 드렸다. 예배 후 우리 모두는 기념촬영도 했다.

칠골교회는 1989∼1990년경에 건립되었으며 봉수교회와 함께 북한의 2대 교회 중의 하나이다. ‘반석교회’라고도 부른다. 이 교회는 김일성의 친모인 강반석을 우상화하기 위해 재건한 예배당으로서 교회 100m의 전방에 강반석의 좌상도 함께 건립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원래 반석교회는 해방 전의 ‘하리교회’를 재건한 것으로서 그 당시 강반석은 이 교회의 집사였다고 한다.

평양시내 관광

 

평양 시내 주요지역의 관광에 나섰다. 만경대(김일성 생가), 을밀대, 개선문 등 말로만 들었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맨 먼저 만경대로 불리는 김일성 생가를 방문했다. 김일성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보통 만경대(萬景臺)로 통칭된다. 북한에서는 '만경대 고향집'이라고도 부르며 '혁명의 요람' 또는 '태양의 성지'로 떠받든다. 김일성의 조부가 당지기로 자리 잡은 뒤로 4대가 거주하였다. 1947년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일대를 만경대 혁명사적지로 지정한 뒤 김일성의 부모와 조부모의 묘를 조성하고 방 3칸과 부엌이 딸린 초가집 등을 복원하였으며, 주변에 만경대 정각과 혁명역사관·씨름터·군함바위·그네터 등을 건설하였다.

대동강 하류에 있는 만경대는 만 가지 경치가 펼쳐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김일성 생가 등이 혁명사적지로 조성된 뒤 주체사상탑·개선문과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으며, 북한 주민들도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의 태양절을 전후로 집중적으로 이곳을 찾아 참배한다. 조성된 뒤 60여 년 동안 약 1억1천800만 명이 방문했다고 설명을 한다.

4월15일은 김일성이 태어난 태양절이라고 해서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리는데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벌써 15일 전부터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하기 위한 연습을 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옥류관 식당 앞에서 기다리는 주민들도 모두 그 행사에 동원된 군중들이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붉은색 조화 꽃을 갖고 있다.

남포갑문

다음날 서쪽으로 고속도로를 1시간 달려 남포시에 도착했다. 식당이나 상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조용한 모습의 도시다. 남포갑문에 대한 여성 안내원의 설명을 들었다.

“남포 영남리와 송관리 사이의 대동강 하구에 있는 세계적 규모인 북한 최대 갑문으로 대동강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81년 5월 4일 착공하였으며 1986년 6월 24일 완공하였다.

미림갑문(美林閘門)·봉화갑문(烽火閘門)과 함께 북한의 3대 갑문의 하나이다. 그해 10월 노동당 6기 4차 전원회의에서 30만 정보 간석지 조성, 20만 정보 새 땅 찾기, 태천수력발전소 등과 함께 4대 자연개조사업으로 결정,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북한이 대동강 종합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대동강 하구에 외해를 가로막아 건설한 길이 8㎞에 달하는 댐을 말한다.

서해 갑문의 건설로 평안남도와 황해도의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대동강 하류 지역의 생활 및 공업용수의 공급도 가능하게 되었으며, 댐 위의 철도와 차도의 건설로 평안남도와 황해도 사이의 교통 시간을 크게 단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서해 갑문이 건설된 이후 수심이 깊어져 대형 선박의 운행이 가능해졌으므로 남포에서 순천·재령의 농공 지대를 하나로 잇는 대운하 망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안내원 설명의 요지이다.

북한은 당초 3년 내에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1개 군단 규모의 군 병력과 각지에서 동원된 수만 명의 노동자를 투입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공사규모가 방대한 데다 작업지역의 유속이 초속 11m로 빠르고 수심 또한 최고 30m로 깊어 작업 조건이 매우 나빴으며, 북한의 토목공사 기술 준이 낮았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어 완공시기를 두 차례(1985년 4월 15일, 1985년 10월 10일)나 연기한 끝에 1986년 6월 24일 완공하였다. 일본인 건설 기술자의 추산에 따르면 총 40억 달러가 투입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60억 달러의 거금이 들었다고 한다.

남포갑문을 견학 후 다시 평양으로 들어와 중식을 하고 써커스를 관람했다. 넓고 어두운 홀에 들어가니 우리 일행은 앞좌석으로 안내되고 이미 북한 주민들이 가족과 함께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다행이 나는 바로 뒷좌석에 북한인 가족이 앉아 있었다. 소지하고 있던 사탕을 어린이에게 주고 말을 건네자 아버지인 듯 보이는 청년이 못 받게 한다. 어린이는 받으려는 표정이었다. 써커스의 내용은 메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주로 힘을 자랑하는 묘기가 많았다.

써커스 관람 후 평양 시내에  있는 기념품 판매 상점에 들렀다. 상품은 대부분 동양화 그림, 청심환 약, 민예품 등이다. 홍 목사는 그림에 안목이 있어서 이 그림은 좋고 유명하다는 등 평가를 해 주셨다. 그 이전부터 홍 목사는 북한의 그림을 수집했고, 최근 밀알교회의 밀알미술관에서 북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달러는 통용이 안 되고 유로화를 받았다.

묘향산관광

그 다음날 다시 평양시내를 출발해서 북쪽으로 고속도로를 달려 묘향산 관광길에 나섰다. 차창으로 보이는 청천강은 맑은 물이 흐르고 가끔 모래를 채취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나는 중간 좌석에 앉았는데 통로에 앉은 여성지도원이 말을 건네기도 한다. 자기 부모도 기독교인인데 6.25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모두 돌아가셨다면서 미제국주의 놈들이라고 한다. 혹시 평양에 지하교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냐고 묻는다. 들은 적이 있다고 했더니 전혀 사실이 아니고 거짓말이라고 강조한다.

가는 중간에 향산호텔에 들려 중식을 했다. 북한에서는 평양을 벗어나면 거의 단체가 점심을 먹을 장소가 없으나 유일하게 묘향산 가는 중간에는 이 호텔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다.

묘향산은 높이 1천909m. 묘향산맥의 주봉을 이루며 예로부터 동금강(東金剛)·남지리(南智異)·서구월(西九月)·북묘향(北妙香)이라 하여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로 꼽혔다. 또한, ‘수이장(秀而壯)’이라 하여 산이 빼어나게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한 모습을 지닌 명산으로 알려졌다. <계속>                             
 

글ㆍ사진=현의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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