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사변이 터진 그해 시월 열이렛날 아버님을 경찰이 연행해 갔다. 언제 하늘나라로 가신지를 정확히 몰라 이날을 아버님 제삿날로 정해 제사를 모신다. 다른 집들의 제사상 가운데에 주로 영정을 모시는데 내 아버님 제사상에는 영정 사진이 없어 모시지를 못하니 주인공 빠진 잔칫상이다. 제삿날이면 아버님 살아생전 모습 담은 영정 앞에 부자간 정 담은 술 한 잔 대접하련만 그러지를 못해 늘 마음이 서글펐다. 

내가 스무 살 되던 해 제삿날, 어머님 앞에 군소리를 했다. “어린 핏덩이와 같은 자식과 갓 스물을 넘긴 색시를 두고 빨리 가시러거든 흔적이라도 남기시지 않고 훌쩍 하늘나라로 가셨단 말인가?” 그 소리를 들으신 어머님은 장롱 속에서 빛바랜 아버님 초등학교 졸업사진 한 장을 꺼내셨다. 마지막 남은 유품속의 내 아버님 얼굴은 희미하여 선명하지 않았다. 눈이 뚫어지게 살펴보아도 동그란 내 얼굴의 윤곽과 비슷할 뿐이었다.

나는 그 유품을 가슴에 안고 광주로 전입해 오게 되었다. 그 유품 속에 담긴 녹두알만한 아버님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초상화로 그려서 살아계신 것처럼 제사상 앞에 모시고 그 동안 쌓아두었던 정담을 한없이 나눠보고 싶은 소망이 컸다.

아버님 생전의 모습을 찾고 싶은 욕심에 유품 속의 사진을 크게 확대하고 선명한 조부님 사진과 내 사진, 할머니 사진, 숙부님 사진들을 챙겨 초상화 그리는 화가를 찾아갔다. 어렵게 찾은 그에게 제작 가능성을 물어보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진들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힘들겠지만 한 달간 정도의 시간을 주신다면 완성해 볼지도 모르겠다며 반승낙을 하였다.

손꼽아 기다리던 약속한 날이 되었다. 그가 완성한 초상화는 몽타주와 비슷한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림에 불과했으나 나는 귀한 보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한걸음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갔다. 초상화를 보신 어머님께서는 “소원대로 내년에는 아버지 제사상 가운데 그 영정을 모시고 정성껏 술을 올려 드려라.” 하시며 아버님이 살아오신 것처럼 반기시면서 눈시울을 적시셨다.

나는 그런 일이 있은 후, 퇴근을 하고 옆도 돌아보지 않고 그 초상화를 그려준 학원으로 쫓아갔다. ‘내가 아버님의 초상화를 멋지게 그려 보리라.’ 첫날부터 여러 시간동안 화가라도 된 듯이 화판에 천을 깔아 팽팽하게 핀을 박고 앙증맞은 양털 붓 몇 잎을 요리저리 움직여 그리는 연습을 했다.

그러다 어느 새 제법 모양을 잡아 갔다. 얼굴에서 으뜸은 살아 있는 눈을 그리는 일이었다. 동공 안의 빛을 하얀 점으로 나타내니 영락없이 살아 있는 사람의 눈이 그려졌다. 나에게 그리기 소질이 있었는지 서예공부를 하고 있을 때라서 필력 때문이었는지 다른 사람보다 진도가 조금 빠르다고 했다. 상업미술의 기법을 이용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게 그리는 솜씨가 늘어나는 것 같아 나를 그곳에 묵어 두기에 충분했다.

한 주 동안의 시간은 이목구비를 완성시켜 준비단계를 끝냈다. 얼굴의 윤곽이 뚜렷한 링컨, 슈바이처, 슈베르트, 베토벤, 오드리 헵번 등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상화를 그리며 얼굴에서 묻어나는 그들의 인생 여정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날마다 연습했던 노력으로 이젠 아버님의 초상화를 그려 보려니 마음이 설레었다. 아버지 초상화 그리기에 몇날 며칠 동안 기를 썼으나 좀처럼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희미한 아버님 얼굴 윤곽만이 나의 얼굴로 착각할 뿐이었다. 원래 한국 사람의 초상화는 그리기 어렵다고 학원 원장이 일러 주었다. 당차게도 시작했던 ‘아버님의 초상화 그리기’ 작업은 그렇게 미완성으로 그만두고 말았다.

슈베르트도 아름다운 교향곡을 미완성으로 남겼다. 그는 초기 여섯 교향곡들은 별다른 부담감 없이 편한 마음으로 손쉽게 완성했다. 그러나 베토벤이라는 거장에게 부담을 느껴 예술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의욕적으로 작곡에 매달렸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미완성으로 남겨 놓았다.

작곡기법의 실험을 거듭하며 몇 개의 교향곡 단편들을 남겼다. 미완성 교향곡 B단조는 그가 남긴 단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며 주제 전개에 있어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교향곡에서 그가 선언했던 ‘대교향곡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이미 그의 기대치는 너무나 높아져 있었을 것이다.

나와 큰딸의 소질을 닮은 것인지 외손녀가 2년 전, S예술고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그림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상화도 그린다고 한다. 옛날에 처음 학원 원장이 그렸던 아버님의 초상화와 내가 미완성했던 초상화들과 아버님의 초상화를 참고화로 쓰도록 줄 것이다.

외손녀가 새로운 기법을 배워 아버님의 진짜 모습을 닮은 초상화를 완성해 제사상에 모시고 술잔 올릴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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