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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의 조율시이
덕진면 영보 生
전 서광초등학교 교장
한국전쟁유족회 영암부회장

우리 집은 5대 종가이기에 제사가 많다. 어린 시절에는 이 날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평소 못 먹어본 쌀밥과 과일, 떡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모할머니는 늘 정성껏 제찬을 준비해 오셨다. 자주 만나면서도 날 새는 줄 모르고 정담 나누시는 것을 보면서 형제애의 돈독함을 느꼈다. 종손이라며 대접해 주시는 당숙에게서 핏줄의 정을 확인했다. 나는 뜻도 모르고 제사상을 차려 제사를 지냈다. 오늘따라 조율시이의 의미를 되새겨보니 조상들의 지혜가 사물 하나에서도 깊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음미해 본다.

제사상의 첫줄 맨 왼쪽에 놓는 대추(조棗)는 씨가 하나라 임금을 상징하며 악장 격이다. 암수 한 몸인 나무라 꽃이 핀 곳에 반드시 열매가 열리는 속성이 있기에 후손의 다산을 기리고, 통씨라서 순수한 혈통을 의미한다. 혼례를 마친 새색시 치마폭에 시부모가 한 움큼 대추를 던져주는 것도 이에 유래되었다. 나는 이 정신이 골수에 박혀서인지 딸 둘을 얻고도 아들을 낳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대를 이었다. 시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집안 가계도를 그려 우리집안 혈통에 대한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해주곤 한다. 

밤(율栗)은 알맹이가 셋으로 삼정승을 뜻한다. 씨 밤에서 싹터 자란 새 밤나무가 첫 열매를 맺어야만 씨 밤이 그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부모와의 연을 끊지 않고 효도하기를 원했다. 조상을 모시는 위패나 신주도 밤나무로 깎는다. 나의 아버지는 6.25사변 때 행방불명이 되었다. 시신을 확인하지 못하여 아버지 묘를 쓰지 못해 성묘할 곳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밤나무를 깎아서 아버지 명전을 썼다. 그것을 아버지 시신 대신 묻고 묘를 조성해 성묘를 하고 있다.      

감(시枾)은 씨가 6개라서 육조판서를 의미한다. 감나무는 열매가 열리지 않으면 아무리 커도 나무속에 검은 심이 없고, 열매가 열렸던 나무만이 검은 심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키우는데 그만큼 속이 검게 탈 정도로 정성을 드렸다. 감나무는 고욤나무(씨를 심으면 작은 열매가 맺히는 똘감나무로 접붙이지 않는 나무)에 접붙이는 산고를 겪어야 비로소 좋은 감이 열린다. 고욤나무와 같은 육신은 부모에게 얻었지만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인 스승을 만나 인간의 도리를 바르게 배우는 접붙이기를 통해 익히고, 갈고 닦는 고통을 이겨내야만 사람다운 사람으로 탄생한다.

예닐곱 살 때 일이다. 동네 부잣집 사랑방에 거지할아버지가 기거했다. 그 할아버지 쌈지에 돈이 있는 것을 알고 군침을 삼켰다. 할아버지가 외출하고 없는 틈을 타 친구는 망을 보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쌈지속의 동전 몇 개를 훔쳤다. 그 동전으로 사탕을 사 먹었다. 꿀맛이었다. 순식간에 그 소문이 동네에 돌아 어머니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머니 회초리 맛을 보고난 뒤부터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 깊이 새겼다.

배(이梨)는 씨가 8개로 8도 관찰사를 의미하고, 껍질의 황색은 오행에서 우주의 중심을 나타낸다. 아시아의 색깔이며 황인종을 상징한다. 속살이 하얀 것은 백의민족에 빗대어 순수함과 밝음, 민족의 긍지를 나타내는 큰 뜻이 포함되어 있다.

  황희 정승 고사에 전해 오는 제사 이야기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아버지 제삿날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제사를 지낼 수는 없겠지요?” 
  “그야 지낼 수 없지”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오늘 돼지가 새끼를 낳았지만 아버지 제사는 지내야겠지요?”
  “그야 물론 모셔야지.” 이를 지켜 본 정승 부인이
  “한 사람은 안 된다 하고, 다른 사람은 된다 하시니 어찌된 일이오?”
  “소나 돼지를 낳은 것보다 제사가 중요한 것인데 제사를 지내고 싶어 하는 놈은 지내라 하고,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 놈은 지내지 말라고 하였을 뿐이오.” 했다.

가정의례준칙에서는 조부모까지만 제사를 지내도록 권장하나 우리 집은 고조까지 합동으로 제사를 모신다. 제찬 준비할 때는 품질 좋은 것을 고르고 정성껏 조리하여 제사상에 올린다. 대종가 진설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제사상을 차리며 돌아가신 분이 평소 즐기셨던 음식을 더 곁들이기도 한다.

요즈음 갈수록 제사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돌아가신 분이 제사 음식을  흠향하시리라 믿기보다는 핵가족 제도로 인한 가족들의 단합된 힘이 부족한 시대이기에 제삿날을 기억하고 가족애를 돈독히 하는 기회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한다.

신중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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