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읍 역리 生 전 동강대학교 교수 (경영학박사) 늘빛 문화교육연구소 이사장 영암군 노인대학장

흔히 바둑판을 ‘삶의 축소판’이라 한다. 바둑의 묘미를 한마디로 말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정상급 기사들의 경우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서 누가 얼마나 마음을 비우는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정신은 바둑의 게임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도 적용될 만한 가치 있는 진리가 아닐까 한다.

바둑을 두는 사람 중에 '돌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격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실전에서 적절한 때에 손을 떼지 않고, 다른 곳을 정복하기 위해 선수(先手)로 공략하는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패배의 쓴잔을 마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사생결단하고 혼신을 다해 상대방과 싸우면서도, 어느 한쪽에 집착하지 않고 돌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비결을 알게 해준다.

반상 위의 돌을 미련 없이 버리는 것처럼, 비행기가 돌발 사태로 불시착을 시도할 경우 항공 기름을 모두 공중에 쏟아 붓는 이른바 제티슨(Jettison) 처방이란 것이 있다. 제티슨은 영어로 배나 항공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물건을 투하(投荷)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제티슨 처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인근 해역에서 미 해군 주력 기동함대가 침몰할 위기에 처했을 때, 노련한 함장이 ‘갑판 위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바다에 던져라’는 명령을 내려 배의 무게를 최대한 줄임으로써 위기를 면했다는 사례가 있어 긴급처방의 대명사로 전해져 오고 있다.

과도한 투자로 인해 기업이 도산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투자를 최대한 줄여 기업의 규모를 리사이징(Resizing)하는 것도 부실기업을 위한 제티슨 처방이고, 당초의 정책사업을 과대하게 수립했을 경우, 실제적인 환경과 실정에 맞게 조정하여 사업을 줄이는 것도 제티슨 처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 조직사회에서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제티슨 처방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버려져야 할 것’이 있고 ‘있어야 할 것’은 버려지는 조직사회,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고 ‘불필요 한 사람’이 설치는 조직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갈수록 험한 세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벌이는 소위 ‘말 폭탄’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수시로 한반도로 출격하는 상황이 두 사람의 거친 설전과 맞물려 또 다른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혹시라도 말에서 그치지 않고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로 치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감추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상호 비방전은 두 사람의 불같은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두 사람 다 자아가 강하고,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모욕을 못견디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의 비난전으로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이 더욱 멀어져가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상호 개인적인 비난전에 몰두하면서 한국 정부와 지도자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북·미 갈등이 고조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남북대화 제의는 북한으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시로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강조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한·미동맹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대통령의 대북 발언에 토를 달기는 쉽지 않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발언은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너무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어느새 10월이 다가왔다. 일엽편주(一葉片舟)와 같은 인생의 항로에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어려운 것이 바로 ‘버릴 줄 아는 마음’이다. 제 아무리 필요한 것이라도 지나친 집착과 고집으로 목표를 달성하려 하는 짓은 온당치 못하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반상위 격돌중인 바둑알을 버리고 제티슨 처방과 ‘인류평화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그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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