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면 영보生 전 서광초등학교교장 영암문학회원 한국전쟁민간희생자유족회 부회장

아들이 방학 동안에 주로 초등학교 돌봄 교실, 유치원, 급식소 수리하는 학교에 도시락을 제조해 납품하는 사업을 한다. 공공기관은 조건이 까다로워 누구나 섣불리 손대지 못하는 틈새사업이다. 처음 시작한 작업장은 공간이 약간 비좁고 시설이 열악했으나 그 곳에서 몇 년 동안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러다가 최근 조금 더 넓은 작업장으로 옮기고 시설을 정비하여 해썹(HACCP)까지 통과시킨 것 같다. 리모델링 작업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아들이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J고등학교에 도시락을 납품하게 되었단다. 거리가 조금 멀기는 하지만 해보겠다는 각오였다. ‘새로운 건물로 이전한 후에 처음 하는 일이니 잘 해야 할 텐데…,’ 여러가지 물건들을 준비하면서 이른 새벽에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어 돈을 대어 주지는 못 할망정 노력 봉사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어쩌겠소, 나라도 도와주어야지” 아내가 일을 자청하였다. “당신이 새벽부터 나간다는데 낸들 편히 잠이 오겠는가?” 함께 돕기로 하였다. 그 동안 가뭄에 시달리다가 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는 장마가 시작되는 날, 새벽 4시경 작업장 문을 열려는데, 그날 쓸 신선한 반찬감 재료를 싣고 온 차가 이미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물품들을 꼼꼼히 검수하여 대형 저온냉장고에 입고했다. 그리고 90kg 쌀을 1시간 반 동안 씻어 전기밥솥에 담아 버튼만 누르면 밥이 되도록 작업을 완료했다. 아내는 반찬 만들 채소를 다듬고, 5시에 출근하는 직원과 6시 출근하는 직원들이 각각 당도했다.

첫날에는 일의 두서가 좀 없어 우왕좌왕하기는 했으나 밥과 찬을 전부 만들어 7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일회용 도시락 통에 정성껏 담고 국은 따로 담는 작업에 10여명이 6.25전쟁은 전쟁이 아니라며 눈코를 뜨지 못했다. 아직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아들이 안절부절 못했다. 학교까지 당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음식은 제대로 준비해 가야 하지 않겠느냐?” 담기를 마무리 할 무렵, 주방에서 국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아무리 빨리 끓여도 부족한 50여명의 국을 20분 안에 끓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얄밉게도 하늘에서는 금방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네가 먼저 출발해라. 국을 끓여 아빠가 따라 갈게.” 급히 국을 끓여 뒤를 따라갔으나 아들과는 만나지 못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배식을 시작하였다. 가지고 간 그 국은 적시에 사용했다. 배식을 마무리하고 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으니 꿀맛이었으나 아내는 먹지 못하였다. 내가 빗속에 워낙 과속을 하여 사고가 날까 봐서 가슴을 조였던 탓이라고 했다. 광주에서 학교까지는 1시간 20분이 소요되는 거리인데 1시간여에 달렸으니….

광주로 올라오는 길에 어찌나 졸음이 엄습하든지 휴게소에서 한숨을 자고 커피를 한 잔하려고 자판기 앞을 지나니, 아들이 뒤에서 불렀다. 무사히 일을 마무리 했단다.

이틀째는 작업이 훨씬 수월했다. 나는 쌀을 씻어 밥 짓는 준비를 완료하고 아욱을 씻는데 아내가 잔소리를 해댄다. “오늘 아욱 씻기는 당신 책임이요. 잘못 씻어 만약에 벌레가 나오면 이 사업은 끝장인 줄 아시오. 아무리 잘 씻어도 한 번 데쳐서 또 씻어야 안전한 디…,” 주방장은 국맛이 떨어진다며 내가 다섯 번 씻은 아욱을 그대로 넣고 된장국을 끓였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오후에 일을 보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큰일 났습니다. 된장국에서 벌레가 한 마리 나와 학생이 사진을 찍어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버렸습니다. 시의회에서 의원들이 조사를 나오고 학부모들에게서 항의전화가 빗발쳤답니다. 학교 측과 학생대표, 학부모 대표가 모여 대책회의를 하여 마무리는 지었습니다만…. 다행히 영양교사와 교감선생님이 유기농, 친환경채소를 썼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냐며 대변해주어 무마된 것 같아요.” 고마운 분들이다. 내일 기자들이 도시락을 점검하여 보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는 것이다.

그 이튿날 아들이 직원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식단대로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요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사건화 되면 다음 사업에 큰 지장을 초래할 터인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단단히 벼르고 기자들이 학교에 찾아 왔더라는 것이다. 만들어 간 도시락을 검사해 보라고 자신 있게 펴 놓으니 살펴보면서, “정갈스럽고 맛있군요. 음식량도 넉넉하고요. 이런 음식을 어떻게 트집 잡겠습니까? 매일 이렇게만 준비해 주신다면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그 날 이후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철저한 위생관리로 깔끔한 음식을 성심 성의껏 제조하고 학생들의 입맛에 맞게 계획한 날까지 800인분 도시락 납품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그런 며칠 후, 아들이 저녁을 먹자고 하였다. 한식집에서 사돈 내외랑 식사를 하면서 자식 일에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안사돈은 내 손녀를 담당하였었다. 아들은 우리에게 일당 챙겨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새로운 작업장으로 이사를 했는데 대형 에어컨이라도 한대 사주자고 아내가 의견을 개진하였다. 기쁘게 그러자고 동의하면서 ‘자식이라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하는가?’

한 마리의 벌레는 미리 맞는 예방주사처럼, 앞으로 아들 사업에서 비일비재할 일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