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석 홍
초대 민선 도지사에 입후보 했을 때의 일이다. 광주 모 방송사 주최로 후보 토론회를 하는데 한 패널이 나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나폴레옹과 나와 닮은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몇 가지를 추려 답변을 했다. 나폴레옹도 나와 같이 키가 크지 않았고 이마가 나왔으며 독서를 좋아 했을 뿐 아니라 기획은 신중히 하되 한번 결정된 일은 강력히 추진한 점이라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 내 별명이 전폴레옹이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했는지도 모른다.
토론이 끝나고 휴게실에 나오자 내가 잘 아는 여성 한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폴레옹에 대한 답변 중 한 가지를 빠뜨렸다고 했다. 나폴레옹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으며 한번 약속한 것은 꼭 지켰다고 말 하면서 나도 그러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그 점을 빠뜨렸구나” 싶었다. 약속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이는 신뢰의 기본이며 정직, 배려와 함께 신뢰사회로 가는 길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여럿이 모여서 산다. 이를 우리는 사회 또는 공동체라 부른다. 생각과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신뢰 즉 믿음이다. 신뢰는 사람이 사회활동을 하는데 발판이 되며 정직, 약속 지키기, 배려하는 마음, 이 세 가지는 신뢰의 필수요소이다.
누구나 거짓말 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정직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믿음의 고리이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 약속을 한 뒤 부득이 이행하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그 사유를 밝히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약속 내용을 바꾸어야 할 때에는 의견을 들어 조정한 다음 이행해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무너지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쉬운 존재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는 배려,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 안아야 신뢰의 끈이 끊어지지 않는다.
정직, 약속 지키기, 배려하는 마음, 이 세 가지가 지켜진다면 그 사회는 안정되고 화합하며 명랑한 분위가가 유지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사회는 불안하고 괴담이 진실처럼 횡행하는 어두운 사회 분위기가 될 것이다.
‘트러스트’란 책을 펴낸 미국의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신뢰를 사회적 자본의 핵심이라 했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이 심하며 거래비용이 높아질 뿐 아니라 기업 투자도 미약하게 된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커지며 경제적으로 손실이 따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사회 신뢰도는 낮다. 경제개발협력기구 35개국 중 23위로서 26.6%만이 다른 사람을 신뢰한다고 답하고 있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신뢰도가 증가하면 경제 성장도 그에 따라 증가한다고 한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북유럽 국가수준(69.9%)으로 사회 신뢰도가 향상된다면 경제성장률이 1.5% 더 상승할 것이라 했다. 이와 같이 신뢰는 개인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적 문제이기도 하다.
신뢰와 관련하여 공직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공자께서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즉 백성들에게 신용이 없으면 입신할 수 없다고 하면서, 믿음 즉 신용이 제일 중하다 했다. 공직자에게는 공무를 제대로 집행할 것이라는 ‘기대’가 주어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공직자는 정직과 약속이행, 배려정신을 실천기조로 삼아야 한다. 공직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고 공적으로 공명하게 집행해야 할 법적 직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자리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귀를 넓게 열어, 깨끗하고 바르고 투명하게 일처리를 하는 기본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자리를 맡겨준 주권자의 기대에 부응할 때 신뢰사회는 구축될 것이다.
지금을 신뢰의 위기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 영암에서라도 ‘신뢰 영암’을 만들기 위해 정직하기, 약속 지키기, 배려하기 운동을 전개하면 좋을 것이다. 행정과 단체, 지역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이 운동을 펴나간다면 영암이 어느새 수준 높은 신뢰사회로 앞장서 있을 것이다.
약력
·서호면 장천리
·전 전남도지사
·전 국가보훈처장관
·왕인박사현창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