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서귀포시 향우회장 박복현씨

1997년 IMF 이후부터는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힘든 사회가 됐지만 시련을 떨치고 다시 일어나 성공한 향우가 있다.

그는 바로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으로도 명망이 높은 시종면 출신 박복현(51.사진) 재서귀포시 영암향우회장이다.

박 대표의 회사는 석재와 석상을 판매하는 중문석재사와 더불어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장례문화를 지켜나가는 장의업까지 하고 있으며 서귀포시 일대에선 외형면이나 매출에서 대형업체로 분류된다. 이렇게 까지 사업을 키운 것은 가난한 대가족 속에서 자라면서 키운 근면함과 자립심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만큼의 큰 좌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시종면 태간리 명산마을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박병화ㆍ김애례 부부의 6남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시종중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살겠다며 신문배달을 하며 광주상고 야간을 다녔다. 그러다가 집안이 더욱 어렵게 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18세 쯤 상경해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이후 구두공장, 속옷공장 등 여러 직종을 경험하고 당시 펜시로 유명한 모닝글로리의 아동용 지갑을 하청 생산하면서 사업에 불을 지폈다.

그는 “IMF 직전에 사업을 하면서 이건 좀 무리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창 커갈 때는 앞만 보고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보유한 현금을 모두 동원했음에도 2억여원의 어음과 채권을 막지 못하면서 부도를 겪고 심신이 모두 말라버렸다”며 “당시 제주도에서 석재상을 하던 친형인 박복규씨의 권유가 없었다면 이곳과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고 회고했다.

20여년 전 제주도에 첫발을 들였을 때 그의 주머니에는 모든 것을 잃고 남은 34만원이 들어있었는데 지금도 어려울 때 힘을 주는 숫자가 되어 마음에 남아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다졌다.

다시 두 주먹을 굳세게 쥐었지만 제주도에서의 삶은 녹녹치 않았다. 인맥도 없었고 아는 사람조차도 없었으며 약간 외진 곳에 땅을 임대해 업체를 꾸렸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우선 지역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사회단체 활동을 결심했는데 이로인해 주민들과 돈독한 정을 쌓으니 인맥이 형성되고 이는 곧바로 회사운영에 도움이 됐다. 전 우근민 제주도지사와도 친분이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향우회, 주민자치위원, 자율방범대 등 여러 사회·봉사단체에서 회장직을 맡는 등 사업과 병행하고 있다.

그는 “제주 사람들은 한 번 맺은 좋은 관계는 죽을 때까지 갈 정도로 남을 배반하지 않는 우직한 사람들이다”며 “나를 있게 해준 이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더욱 사회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고 더 나아가서는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정치 분야에서도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봉사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 땅이면서 접어버린 학업도 재개하도록 한 곳이다. 뒤늦게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를 마쳤고 2014년에는 제주관광대 사회복지과를 50대의 늦깎이로 졸업했다.

그는 “사회단체 활동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경력란에 기재되는 고등 중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사업에 매진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더욱 발전되고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기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사회복지 분야의 전문적인 공부를 할 수 있어 보람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미래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기존사업은 안정적인 궤도로 가고 있지만 지역에 도움이 되면서 수익도 창출되는 사업을 준비 중이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장례식장이다. 그동안 서귀포시 중문동엔 장례식장이 없어 주민들이 불편해했는데 이를 해소하고 장의사를 해온 오랜 경험과 산 일 등의 모든 절차를 원스톱으로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박복현 향우회장의 성공은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 도전정신, 좋은 인맥을 형성하기 위해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노력해온 것과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이뤄진 것이다. 아마도 전국에 있는 모든 영암향우들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되며 향우들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어 오늘도 월출산은 편안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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