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영암읍 장암출생

문 병 호 /영암읍 장암 출생/호남미래포럼 공동운영위원장/전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국가인권위 정책자문위원

인류가 한곳에 정착해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농업혁명은 12천년쯤 전에 시작됐다고 본다. 아마도 한반도 특히 호남, 그 중에도 영암은 지구상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정착 농업이 시작된 지역의 하나일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은 둑을 막아 물길이 막혔지만 엄마 자궁같이 깊고 아늑한 하구에 바닷물과 밀물이 넘나들고 너른 개펄과 들판, 숲과 언덕과 개천이 아기자기하게 이어진 영산강 유역은 온난한 기후의 혜택까지 더해져 인간이 먹을 것, 입을 것, 땔 것 같은 생활자원을 획득하는데 가장 유리한 조건이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발굴이 일부 이루어진 선사, 고대 유적들이 그 증거다.

이렇게 시작된 농업은 오랜기간 개인의 생존, 공동체의 성쇠를 좌우하는 중심 산업이었다.

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관용구까지 생겨났다.‘천하대본농업이 소홀하게 취급되는 풍조가 생겨난 것은 산업혁명 이후다.

우리나라는 5.16 쿠데타를 계기로 국가주도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60년대 이후 인구의 도시이동, 경제에서 농업의 비중 감소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전체 인구의 80%이상이 농촌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던 상황이 90%가 도시로 이주하고 10% 미만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는 상황으로 뒤바뀌었다.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놀라운 일은 농업인구가 급격히 줄었음에도 주곡인 쌀 생산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점이다.

농기계, 종자, 비료, 관개 등 영농 전 분야에서 기술혁신과 기반시설 투자가 이루어진 결과다. 그 중에도 농업 기계화의 공이 크다. 미국에서 전체 인구의 5%가 채 안되는 농민이 32천만 인구를 먹여 살리고 수출을 하고도 남는 경쟁력을 유지하는 배경도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산업화를 뒷받침하는 부수적 산업으로 농업을 다뤄 온 그간의 여러 정책들이 농업의 본질을 훼손하는 역기능을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폐해가관치영농의 관성이고 기업농의 출현을 막는 농지소유 제한, 그리고 식품마저 일반 상품처럼 다루게 된 가치의 전도다.

벼 품종의 선택으로부터 마지막 쌀의 수매까지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절은 지났지만 정부가 농장주 같고 농민은 정부방침에 맞춰 단순노동을 하는 듯한 구도는 근본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자유무역협정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관치 체질이 더해진 측면마저 일부 있다.

이제 농업의 개념과 틀 자체를 바꾸는 제2차 농업혁명이 시작되어야 한다. 산업화가 가져다 준 놀라운 과학기술의 성과를 바탕으로 농업의 본질을 회복하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인류문명의 위기는 피할 수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196030억이던 세계인구는 현재 72억이다. 50년 남짓한 사이에 2.4배가 늘어난 인구폭발은 인류역사에서 전례가 없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와 물 부족을 감안하면 식량자원의 확보는 생존의 문제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가장 앞서야 할 것이 무얼까. 농업의 본질을 찾고 지키는 농심 회복이라고 본다.

정부 방침에 맞춰 관행농업을 반복하는 농업 노농자가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농사를 자기 책임 하에 짓는 진정한 농민이 등장하고 그들이 농업의 중심에 서야 변화가 가능하다. 길은 두 갈레다. 가족끼리 농사를 짓는 전문화된 기술 집약형 소농과 기계화에 바탕한 대규모 기업농이다. 호남은 이 점에서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 영암호와 해남호 주변의 간척지부터 대규모 기업농을 키워내는 것으로 농업의 낡은 틀과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국내쌀 생산이 과잉이라고 농민단체들이 영농을 막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는 우물 안의 발상이다. 이웃 장흥의 어느 농가는 최고 품질의 유기농 쌀만 생산해 한 가마에 250만원 받고 부유층에 판다. 소문을 듣고 중국 상류층의 주문까지 몰리지만 량이 한정돼 다 응할 수가 없다고 한다. 명품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파는 전략도 이미 현실이 됐고 대규모 기계농으로 가격경쟁력을 갖는 것도 해볼만 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농업의 수출산업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문제는 사람. 농심을 지닌 참 농민들이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모습을 영암에서 보고 싶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