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서호면 몽해리 출생 장천초등학교 졸업 전 목포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그가 우리동네를 찾아든 것은 3년 전 쯤이다. 정확히 말해 홀로된 장복골댁이 세상을 떠난 이후 오래도록 방치된 집에 살게 됐다. 사촌누님 해남댁을 언덕삼아 우리마을에 들어왔지만, 콕집어 말 할 수없는 어떤 힘에 이끌리어 우리마을 아시냇개로 오게 된 것이다
그가 온 뒤로 아시냇개의 분위기는 하루하루 달라졌다. 적막감이 줄어들고 이웃 간에 교류가 빈번해졌다. 처음에는 골목길을 비질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차츰차츰 600평도 넘는 건조장도 청소하고, 쓰레기장도 정리하고, 골목길 해묵은 쓰레기도 치웠다. 부녀회장인 해남댁 누님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매일매일 아침이면 회관문을 열고, 저녁이면 회관문을 닫는다. 흐드러진 트로트를 틀어놓고 청소기로 먼지를 제거하고, 물걸레로 닦고, 주방의 쓰레기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리하니 동네사람들이 회관을 더 찾게 된다.
그는 나에게 살아온 이야기도 들려줬다. 6·25전쟁으로 고아가 됐다는 것, 어려서부터 큰 아버지댁에 의탁하여 해남댁 사촌누님을 친누님처럼 생각하며 살게 됐다는 것, 평생을 주로 페인트 기술자로 전국을 돌며 살았다는 것을 말해줬다. 페인트 기술자로 살면서 겪어야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노임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일이 끝나면 과연 품삯을 받아낼 수있을 것인지, 얼마를 현금으로 받고 얼마를 외상으로 놔둘 것인지, 항상 조바심을 치며 살았다고 했다. 대부분 일당을 높게주는 곳에서는, 품삯을 제때 받지 못하거나 일부를 나중에 받게 해놓고 결국은 떼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래 항시 일을 할경우 제일 어려운 곳은 남겨놓고, 노임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마지막에 가서 마무리하는 기술자의 심술같은 것이 생겼다고도 했다. 오른팔 인대가 늘어나고 젊은이에게 밀려 더이상 일을 계속할 수가 없어 귀촌하게 된 것이다. 난 그에게 몹시 미안했다. 4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일자리가 없어질까봐, 월급을 못 받을까봐 조바심을 쳐본적이 없기에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자식을 너무나도 잘 길러놨다. 아들은 직업군인으로 딸은 회사원으로, 며느리도 잘 얻어 아들과 함께 부부 직업군인이다 손주도 얻었다.
대부분 7,8십대 노인들만 사는 아시냇개에서 나와 함께 그는 젊은이 취급을 받고 있다. 모내기철이면 모판을 나르는 일에 일손을 아끼지 않고, 수확철이면 농작물 수확을 도와준다. 특히 어르신들이 하기 어려운 매실따는 일과 감따는 일은 거의 도맡다시피 한다. 작년에는 나와 함께 동네나무도 심고 장승도 두 쌍을 깎아 동네어귀에 세우기도 했다. 지금도 집집을 돌며 김장일을 돕고 있다. 전구 가는 일부터 못하나 박는 일까지 솔선해서 해주니 이제는 어르신들이 미안함도 잊은 채 그를 찾아 도움을 요청할 정도가 돼버렸다. 그가 어르신들을 돕느라고 스쿠터를 몰고 이집 저집을 돌때면 동네가 살아서 꿈틀거린다. 그는 어려운 일도 해냈다. 관계기관에 연락해 오래도록 방치된 전신주도 제거했고, 어지럽게 얽혀있는 전선줄도 정리했다. 
그런 그가 아시냇개에 자신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여태껏 못하고 있다. 현재 살고있는 집은 아들이 언젠가는 도회지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며 팔지 않는다. 조씨네 빈집은 여러 경로를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되지 않고, 퇴직하면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도회지 사람이 사놓은 집은 어느사이 10년이 넘게 방치되고 있어 그 모습이 흉물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팔려고 하지를 않는다. 대지로 되어있는 집터들은 등기를 열람하여 주소지로 편지를 띄웠으나 아직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우리마을 아시냇개에는 정우요양원을 제외하면 서른네 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7,8십대라 길면 10년, 짧으면 5년 안에 반토막이 날것이고 기약없이 방치해둔 빈집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마을에 찾아온 빈객은 여태껏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사이 그가 없는 아시냇개는 생각할 수없게 돼버렸다. 그런 그를 나는 서울양반이라 부른다. 그는 틀림없는 서울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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