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서호면 몽해리 출생 장천초등학교 졸업 전 목포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나는 순희(順姬)란 이름을 좋아한다. 말희(末姬)도 좋고 연희(戀姬)도 좋지만 그 뜻이 좋아 순희란 이름을 좋아한다. 내가 지배성이 강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고와 부드러움이 여자의 속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는 분별할 수 없지만, 맘에 들지 않아도 따르고 얄궂은 이해타산과는 생리적으로 어울리지 못한 채 순둥이처럼 살아가는 그런 여자가 그리워 순희란 이름을 좋아한다. 순희 이름 앞에 서면 맘이 편해지고 순희 이름 뒤에 기대고 있으면 일상이 포근해진다.
내 초등학교 시절에 최씨 성을 가진 선생님 따님 순희가 있었다. 웃는 모습이 귀여웠으며 하얀 얼굴이 시골의 다른 여자애들과는 달랐다. 선생님 따님이니 우쭐돼도 흉이 되지 않으련만, 언제나 수줍었고 공부도 잘한 편이 못되었다. 내가 짓궂게 굴어도 언제나 하얀 이를 드러내 놓고 웃으며 유난히도 까만 단발머리를 매만지곤 했다. 키는 작았고 눈은 맑았으며 국어 책을 잘 읽었다. 1학년부터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는데 4학년이 되고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순희의 공부 잘하는 6학년 오빠가 물에 빠져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순희의 맑은 눈은 형편없이 부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하였으며 가끔씩 고개를 숙인 채 훌쩍거릴 뿐 소리는 내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등교했을 때, 최 선생님께서는 전근을 가시고 순희도 자기 아버지 따라 가버리고 없었다. 순희가 없음에 한동안 너무나 쓸쓸했다.
대학을 다닐 때 향우회에서 박순희를 만났다. 무척 건강미가 흘렀으나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향우회 모임 후부터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대학 순희가 보이기 시작했다. 웃는 모습이 달빛 섞인 박꽃 닮았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얘기도 나눴지만 사교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정도였고 일상의 대학생활을 넘지는 못했다. 언제나 단정한 투피스 차림이었고 오른손에는 두꺼운 서브노트와 교재 한권 정도가 들려있었다. 그 시절 초등학교 총각선생은 금사가 정말 안 나갔다. 오죽했으면 “남자 교대생 하고는 말도 하지 말고, 그 쪽으로는 얼굴도 돌리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다”며 치근대는 동급생에게 일갈한 사건이 벌어졌겠는가. 대학 순희도 결국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뛰어 넘지는 못했다. 교대생은 한사코 멀리하고 얌전한 얼굴에 가벼운 미소만 띄운 채 남학생들의 관심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전해들은 얘기지만 대학 순희의 집에서는 어릴 때부터 이웃해 지내던 자그마한 사업을 하는 총각과 결혼을 하도록 원했고, 대학 순희 역시 그 말에 순종해 비교적 빨리 시집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교직을 함께 한 관계로 결혼 후에도 가끔씩 보였지만 수수한 모습이었다.
교감으로 근무 당시 선생 이순희를 만났다. 단정한 외모에 흐트러짐이 없는 선생 순희는 당시 6학년을 담임해 학급경영을 잘했다. 내가 무리하게 6학년에게 졸업논문 작성을 요구하고, 발표회 개최와 논문집 발행을 계획했을 때, 적극적이었고 순희 선생이 지도한 아이들의 논문은 수준이 높았다. 그 것 가운데는 “우리 엄마들은 어떤 노래를 즐겨 부를까”하는 논문이 있었다. 그 논문 발표장면이 텔레비전 방송에 방영되기도 했다. 내가 업무지시를 할 때도 항상 경청하는 태도였고 부정적인 자세는 없었다. 나는 다시 교육청으로 순희 선생은 다른 학교로 이동했으며, 다른 학교에서도 보직을 받아 열심히 한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한번은 시장에서 그 순희 선생을 만났다. 붉은테 안경너머로 반가워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함께 온 남편과 아이들을 인사시켰는데 선생 순희와 닮아 있었다. 아이들은 순희 선생처럼 단정했고, 남편 또한 순희 선생처럼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은 대학 때부터 열렬히 연애를 한 끝에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랐다.
내가 근무했던 사무실에 30대 후반인 미국인 원어민 교사가 있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장가도 못가고 혼자 조그마한 개 한 마리와 살고 있었다. 그 개의 이름이 순희라고 했다. 그는 밖에서 저녁 회식을 하다가도 시간이 늦어지면 순희 때문에 가야한다며 귀가하고, 외박을 할 일이 생겨도 순희 때문에 외박 스케줄을 끝내 외면했다. 미국인인 그가 하고많은 이름 중에 그 애완견을 왜 순희라 이름 지었을까? 그도 나처럼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만 같은 순희가 그리워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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