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03일(제167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12월. 마지막 달력 한 장이 힘없이 매달려 있다. 막다른 골목의 어귀까지 쫓겨온 듯한 느낌이다. 비로소 ‘시간감각’이 확연히 느껴지는 달이기도 하다. ‘마지막 잎새’처럼 달랑 벽에 붙어 있는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면서 공허한 가슴 달랠 길이 없다. 왜일까. 그건 필시 1년이 여기 와서 멈춘다는 사실일 게다. 그럼 한달의 의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1년을 마무리 짓는 달이므로 결산(決算)을 뜻함이 함당할 터. 그 12월은 자신만을 결산하는 달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지난 1년을 반성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다. 자, 돌이켜 보자.

우선 정치권은 어떤가. 개혁과 상생의 정치를 외쳐대던 정치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가. 입만 벌리면 국민을 위한답시고 떠벌리던 그네들은 정쟁에 몰입해 있을 뿐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늘상 개혁하자고 외쳐대곤 있지만 정작 그네들은 서로 딴죽걸기에 바쁘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추악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틀릴 게 하나도 없다. 달만 젊은 개혁소장파들의 원칙론만 난무할 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청사진만 거창했지 뭣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그러고 보면 무지몽매한 국민들만 속고 살아가고 있다. 요즘도 국회에서는 쟁점을 둘러싼 생산적인 토론이 자취를 감추고 여야간에 감정을 앞세운 기 싸움만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다투는 민생법안이나 예산안 심의가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다.

그럼 경제는 또 어떤가. 외환위기 이후 수년째 곤두박질 쳐온 경제는 더 이상 내리칠 속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오히려 가진 자들의 배만 불리게 된 지난 수년간은 서민들의 얼굴에 웃음마저 앗아가 버렸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서민들은 아우성인데 가진 자들은 오히려 꽉 들어쥔 채 몸사리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빈(貧) 자들만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 그래도 되 서민층은 낫다. 농촌은 어떤가.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후 지난 10년간 쌀시장 개방을 미루면서 수십조원의 혈세를 쏟아 부었는데도 농민들의 빚은 늘어만 갔고 국내 쌀의 경쟁력은 전혀 제고되지 않았다. 당장 쌀시장 개방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땜질식 미봉책이 낳은 결과이리라. 사회적으로 보아도 기댈 곳 하나 없는 형편이다.

전대미문의 대규모 입시부정 행위며, 군인사 비리는 비록 없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많은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린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부정부패 불감증에 걸려 있다고는 하나 수능시험을 보는 학생들까지 버젓이 부정행위를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문제투성이인 우리 교육의 현실이 새삼 한심하고 절망스러울 뿐이다. 물론 수능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던 것은 정부의 국가시험 관리체제가 허술했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려는 성공 제일주의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직사회의 인사비리는 조직 전체에 해악은 물론 국가 전체 경쟁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렇지만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도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통용되는 지금의 현실이 12월을 맞으면서 더욱 안타깝게 한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