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9월 02일(제203호)

9월 초입, 가을이 완연하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워 밤잠을 설치게 한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의 문턱에서 제법 쌀쌀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가느다랗지만 길게 창틈으로 스며드는 청량한 기운. 아침저녁의 이 서늘함이 엊그제만 해도 가을은 멀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또 하나의 절기(節氣)를 실감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을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오는가 싶다. 벼르기를 오래하여 발자국 마다 낱낱이 알리면서 오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어느 날 한줄기의 서늘함으로 해서 이내 우리 곁에 와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예로부터 가을은 우리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줬다. 특히 농촌은 더더욱 그랬다. 마당 한켠 울타리엔 호박이며 오이가 주렁주렁 열려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고, 그 옆에 서 있는 감나무에 열린 감은 미처 익기도 전에 성급한 아이들의 간식으로 애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농촌엔 아이들로부터 그토록 사랑받았던 감마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집집마다 주렁주렁 열린 감은 아이들의 군침을 흘리게 했지만, 지금은 그대로 방치돼 썩어 없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울음이 그친 농촌에 노인들 몇몇이 동네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앞 황금 들녘의 풍성함도 빛을 잃은지 오래다. 예전엔 벼 한포기라도 애지중지하며 공을 들였으나 이젠 그럴 필요도 없게 됐다. 어느덧 풍성한 가을이 우리들 곁에 왔지만 활력을 잃어버린 농촌엔 쓸쓸함만이 감돈다. 정부에서는 한때 농촌을 살리기 위한 귀농정책을 폈지만, 그도 흐지부지 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엔 이 ‘귀농정책’마저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밀려 유명무실해 질 우려마저 낳고 있다. 정부가 엊그제 발표한 ‘8.31부동산 종합대책’에 농·어촌 주택 및 토지 취득자에 대해 부여했던 양도소득세에 대한 특혜를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29일 농어촌에 활력을 주기 위해 지난 해 도입한 농어촌 주택 취득자에 대한 과세특례 제도를 올해 말에 종료한다고 밝혔다. 이는 농촌 토지·주택구입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농촌 활성화를 꾀하려 했던 종전의 정책을 완전 백지화한 것이다.

그동안 농촌 활성화 사업을 추진해오던 농림부나 전남도의 입장에서 보면 손발이 안맞는 절름발이 행정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농촌 고령화 속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빠르고, 인구 200만 붕괴가 코앞에 두고 있는 전남도로서는 ‘닭 쫓던 개’ 신세 꼴이 아니고 뭣이겠는가. 결국 정부가 부동산을 잡기위해 귀농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밖에 달리 해석할 수가 없겠다. 물론 농지나 임야에 대해 도시민들의 투기성 거래는 분명히 막아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입법취지를 무시해가며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보완책을 마련해 당초의 정책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갈수록 공동화 되는 농촌에 활력을 되찾아 주고, 동시에 농촌 유입인구를 늘리기 위해 도입된 ‘귀농정책’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의 보다 신중한 자세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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