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2일(제131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정직하게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노릇인가 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正直’을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사를 보면 우리의 조상들이 정직을 왜 ‘지상의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쳐왔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과거 역사를 눈여겨볼대목은 정직한 사람은 대다수가 불행한 생애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정직한 사람이 부정적·부도덕한 사람으로부터 두려움의 존재가 되고, 존경을 받는 사회나 나라는 대체적으로 융성해왔다는 사실도 결코 우연은 아님을 알아야 할 일이다.

영국에는 정직에 관한 격언이 많다. 일찍부터 정직한 국민성을 형성해왔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 대표적인 담론 중 하나는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하라’는 말이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만 행복하고 싶거든 결혼을 할 것이며, 한달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 집을 지으라. 그러나 일생을 편안하게 마치려면 정직하라고 했다. 정직을 새삼 강조한 말이다. 역설적으로 세상에 정직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성실성의 결여에서 비롯된 부정과 부도덕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 당연히 바람직스럽지 못한 국민성이 형성됨은 물론이다. 지식은 있으되 정직하지 않은 자는 세상을 어지럽힌다. 차라리 배움은 모자라더라도 정직한 사람이 이웃을 살찌게 한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쩐지 우리 사회는 배웠다는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짓을 앞장서서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근래 요동치던 정국은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지는 형국을 맞게 됐다. 한때 강력한 대통령의 후보였던 한 인사는 국민 앞에서 또 한번 머리를 조아리는 신세가 됐다. 그는 벌써 이번까지 세 번째 볼썽 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부정하게 모은 대선자금이 속속 드러나면서 뒷전에 앉아있을 순 없었을 것이다.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사태도 결코 정치공세로 치부하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벼랑 끝에 내몰린 야당의 정치적 음모가 엿보이긴 하지만 결국 ‘빌미’를 준건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역공을 취하며 내뱉고 있는 ‘차때기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 취임이후 끊임없이 정치공세에 시달려온 노무현 정부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대선자금 10분의 1론’을 내세우며 그나마 깨끗했노라 장담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할말을 잃게 됐다. 경위야 어찌됐건 ‘정직’하기 못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를 종식하고,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돼야 한다”며 ‘반칙없는 사회’를 강조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초 밝힌 단호한 의지를 지금도 우린 굳게 믿고 싶다. 부패 정치인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불법대선자금이 온 국민에게 까발려지는 이런 초유의 사태도 결국 ‘깨끗한 사회’로 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작업에 예외가 있을 순 없다. 그럼에도 야당의 정치적 공세는 급기야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강수를 둠으로써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탄핵발의를 한 그들이 과연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 정치개혁은 뒷전인 채 정쟁만 일삼아왔던 그들이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 곳곳에서 음모가 꾸며지고 술수가 난무하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기대를 또 한번 접게 된다. 개혁을 외치면서 뒷전에서는 구태를 답습하는 모습은 아직도 우리에겐 ‘민주주의는 먼 나라의 얘기 일 뿐’이다. 선거가 임박할수록 뒷거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임이 뻔하다. 상식선을 넘어서는 행태가 벌써 국민들의 눈에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놈, 저놈 싸잡아 욕하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가.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