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0일(제128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우리 농민들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닥쳐왔다. 한 ·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네 번째 시도 끝에 지난 16일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몸을 내던져 막아보려던 농민들의 외마디는 허공에 맴돌 뿐이었다. 농촌 출신 의원들의 저항도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경제 논리에 떠밀려 빗장이 풀려버린 우리 농촌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현실에서 국회를 통과한 이번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은 농민들의 목을 더욱 옥죄는 형국이 된 것이다. 우선 협정이 발효되면 우리나라는 주력 분야인 공산품 수출은 크게 늘어나겠지만 농업을 비롯한 일부 분야는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때문에 농도인 전남은 가장 많은 타격을 입게 된다는 사실이 우릴 더욱 슬프게 한다. 역대정권의 지역차별 정책과 공업화 과정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전남 사람들은 이제 개방파고에 시달려야 하니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10년간 4천800억원에서 최고 6천억원대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 전문기관의 분석이고 보면 이를 최소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물론 정부는 FTA통과로 벼랑 끝에 몰린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 10년간 119조원을 지원한다는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쌀 전업농 규모화를 지원하고 축산물 품질 고급화를 추진하며 농촌의 교육·의료 걱정을 해소할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의 예를 들춰보면 미덥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10년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에도 62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지금 그 효과는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갖가지 시행착오는 오히려 농민들에게 고통만 안겨주었을 뿐이다. 이번 협정으로 전남에서는 과수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1조 5천억이 투입될 계획이지만 사업별 자부담 비율이 높은데다 융자에 따른 담보제공 등 요건이 까다로워 벌써부터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국가간 FTA 체결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농민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해마다 재해와 싸워야 하고, 갈팡질팡하는 농산물 유통체계 때문에 여지껏 가격파동을 겪어야만 했던 농민들에게 더 이상 무슨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정부는 FTA체결이 무역전쟁에서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무기나 다름없다고 강변하지만 허술한 농촌대책은 온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뿐이다. 쌀농사는 경제논리보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고 보면 결코 농촌대책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앞으로 도하개발어젠다 농업협상과 쌀 재협상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서 한치의 오차 없는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우리 농촌이 회생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농촌능 광우병에 이은 조류독감 파동으로 붕괴직전에 놓여 있다. 수도권은 인구를 다 수용하지 못해 신도시를 수십개씩 만든다고 떠들어 대고 있지만 농촌은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개발의 이익은 여전히 있는 자들의 몫이다. 이 정부에서도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을 부추기는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분통 터지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 농촌이 경제개발의 들러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농민들에게 쌀농사는 여전히 주소득원이다. 때문에 농업의 위기는 곧 농도 전남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여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우리의 농업·농촌의 현실을 보면서 갑자기 가슴이 콱 막혀온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