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18일(213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30대의 한 농민이 ‘농업인의 날’ 이었던 지난 11일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그는 농촌과 농업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정부의 정책, 쌀 문제 등을 지적하는 유서 한 장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지난 12일 오전 10시 20분께 담양군 남면 인암리 한 마을회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 농업인은 이 마을이장 정모씨(38)로, 늦은 나이에도 지난해는 담양소재 2년제 대학 관광정보과에 입학해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숨진 정씨의 시신 주변에는 제초제로 보이는 농약과 풍경사진 한 장이 있었다. 정씨는 풍경사진 뒷면에 자신이 자살을 택한 사유를 밝혔다. 정씨의 유서는 13일 새벽 경찰이 ‘사진 촬영본’을 유가족과 농민단체에 건네면서 공개됐다. 정씨는 유서에 “농촌에 관한 정책을 현실에 맞게 세워 농촌이 잘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며 정부의 농업정책을 질타하는 말을 남겼다. 또 “농촌이 정말 어렵습니다. 정말 농촌문제 현실성 있게 잘 세워야 농촌이 산다” 고도 적었다.

 ‘농업인의 날’ 농업과 농촌 현실 때문에 한 농민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또 전북 고창에서 사는 한 농민은 “정부가 농민들에게 채운 족쇄를 제발 풀어 달라”며 서울까지 450km를 걸어가겠다고 나섰다. 지난 14일 상복(喪服)을 입고 몸에 쇠사슬을 두른 채 고창을 출발해 서울 여의도 국회로 떠난 이 농민은 “정부가 나서서 농업을 가둬버렸다” 며 족새를 풀어달라는 의미에서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됐음을 밝혔다. 이 농민은 “촉망받는 30대 농민이 지난 11일 농업인의 날에 죽음을 택했듯이 농업과 농민이 죽어나가고 있다. 이미 농업은 ‘상중(喪中)’” 이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국회의 쌀협상 비준동의안 처리를 하루 앞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는 농민 500여명, 경찰 60여명이 다치고 경찰버스 7대가 화염에 휩싸이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광주·전남지역에서도 이날 농민 3천 500여명이 국회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동의안 저지, 쌀 수매제 부활 등을 위한 대정부 투쟁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이에앞서 지난 10일부터 쌀 협상안 비준 반대 등을 요구하며 삭발 단식농성에 들어간 전남도의회 의원 11명은 일주일간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도의원들은 “지난해 말 쌀 재협상과정에서부터 예고됐던 ‘쌀 대란’이 20% 이상 쌀값폭락으로 이어지면서 농가소득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며 “정부는 하루빨리 농업·농촌을 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들을 마련하라” 고 촉구했다.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일련의 사태는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이 어디쯤 와 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한 농업인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주었고, 또다른 농업인은 스스로 족쇄를 채워 저항의 몸짓을 나타내는 등 곳곳에서 처절한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에서는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다’ 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뾰족한 대안을 못 내놓고 있으니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늦가을에 나뒹구는 낙엽과 함께 갑자기 찾아든 추위가 더욱 차겁게만 느껴지는 건 아마 이 냉엄한 현실이 겹친 때문이 아닐까. 결혼도 포기하고 홀로 노부모를 모시며 농사를 짓던 한 농업인의 죽음.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이 젊은이의 처절한 외침이 한낱 공허한 메이라로 끝나는가 싶어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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