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5일(214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으로 매달려 있는 두 개의 잎 새, 그것을 보는 것처럼 벽에서 떨고 있는 남은 달력 두 장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불꽃처럼 타버린 10월, 풍성했던 그날의 덧없음을 아쉬워하기도 전에 이제 들리는 것은 낙엽의 장송곡. 세월이란 나는 화살처럼 빠르다는 것을 가르치면서 또 한해는 저문다. 11월. 자신을 태워 새 날을 암시하는 미래에 대한 순교자(殉敎者)다. 가을과 겨울의 징검다리를 놓아가면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죽어가는 것이 11월인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도 11월의 죽음을 이렇게 애상(哀想)했다. 온갖 것은 이제 뒤덮이고 퇴색하려합니다/ 안개 낀 나날이 불안과 근심을 깨어줍니다/ 폭풍이 불어제친 밤이 지나면 아침엔 얼음소리가 납니다/ 이별이 울고 세상은 죽음에 가득차 있습니다/ 그대여 죽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고 그대 몸을 맡기시라/ 죽을 수 있음은 성스러운 지혜입니다/ 죽음에 준비를 하시라/ 아껴감으로써/ 그대는 보다 더 높은 생명에 들어서려니···. 세월이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면서 자락을 펴는 달이다. 우리는 세월이 무엇인지 알면서부터 괴로움을 배운다. 초조와 불안, 공포 따위도 함께 익혀나간다. 아무도 세월은 붙잡지를 못한다. 물이 두 번 흘러내리지 않는 것과 같다. 누구도 같은 시냇물에 발을 두 번 적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란 모든 사람을 슬프게만 하지는 않는다. 덧없어 하는 자에게 회한(悔恨)을 안겨줄 뿐이다. 요즘의 세상사는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우리에게 떠안겨준다. 안기부 도청문제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고, 쌀 수입을 늘리느냐 줄이느냐의 국회 비준 문제도 조용해지지 않는데, 교원평가 문제도 시간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생존권에 맞선 농업인들의 죽음과 달리 사회 저명인사들의 죽음은 우리의 짧은 인간사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되짚어 보게 한다. 우리가 얼핏 손꼽아 보아도 최근 2년 사이 사회지도층 인사 5~6명이 검찰조사나 내사 단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03년 정몽헌 현대 아산이사회 회장을 비롯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박태영 전남도지사, 김인곤 광주대 이사장, 그리고 최근 숨진 이수일 호남대 총장에 이르기까지 누구하나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김인곤 광주대 이사장을 제외한 이들 모두는 비리사건에 연루된 유력인사들로 검찰 조사 후 자살하는 사건이 이어져 ‘고위층 자살의 심리적 배경’ 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에 불려 다닌 고위층 인사들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전문가들은 죄책감과 조사과정에서 훼손된 자존심 등 감당키 어려운 압력을 견디지 못하거나 ‘나는 결백하다’ 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진단한다. 죄책감과 복수의 의미(내가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곤란해질 것), 조사 때 받는 억압감과 자기모멸감 등으로 대부분 충동적이라기보다는 본인의 확고한 의지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요즘 세상은 시끄러운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럴 때 다산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節而不散 親戚溿之 樂施者 樹德之本也”(절약만하고 쓰지 않으면 친척이 멀어진다. 기꺼이 베푸는 것은 덕을 심는 근본이다.)

베풀기(施)를 즐겨하라(樂)는 목민심서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11월의 의미를 또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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