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16일(217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칸트는 유서(遺書)를 가르켜 ‘생에의 가장 불행한 기록이고 또 가장 효력있는 기록’ 이라고 했다. 절망의 순간에 쓰여진 유서일수록 그처럼 불행한 기록은 없을 것이고, 또한 사람이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진실할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 들어 첫눈과 함께 폭설이 내린 지난 6일 한 농가가 또 죽음을 택했다. 아들에게 “나 먼저 갈테니 잘 살아라” 는 유언을 남긴 채 홀연히 세상을 등진이 사람은 미암면 호포리에 사는 50대의 한 축산농가로 밝혀졌다.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살충제를 먹고 숨진 채로 발견된 이 농민은 전날 내린 폭설로 2만여 마리를 사육중인 오리축사가 무너지자 아들과 함께 소방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출하작업을 벌이는 중이었다고 한다. 5년 전부터 1천 650평의 축사에 오리를 사육해오던 이 농민은 이번 폭설로 축사가 무너지는 바람에 사육중인 오리마저 절반가량 폐사되자 크게 낙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출하량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빚만 쌓인데다 또다시 폭설피해를 당하는 2중고를 겪으면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삶의 마지막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선택하리만치 어려움을 겪는 농가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그동안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우리고장에는 이번 폭설피해가 갈수록 늘어나 14일 현재 400억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전남도내에서는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풍수해의 경우 도로파손·교량유실 등 공공시설물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과는 달리 이번 폭설피해는 시설하우스와 축사 등 농가들의 순수한 재산피해가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영암군 역사 이래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영암군은 비상근무 체제로 전환하고 복구작업을 벌이는 한편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다른 시·군과 연대해 정부에 제출해 놓고 있다. 영암군의회도 농민들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폭설피해까지 발생하여 일반적인 복구지원만으로는 정상적인 회복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정부차원의 특별복구지원과 함께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지역출신 유선호 국회의원도 호남출신 다른 의원 3명과 함께 지난 8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제출하는 등 모두가 한목소리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재난지역 선정기준이 내년부터 대폭 완화될 예정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시·군·구의 경우 총 재산피해액이 3천억 이상(이중 사유재산 피해액은 600억 이상)이거나 이재민수가 8천명 이상인 경우로 제한돼 있어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전술했듯이 이번 폭설피해는 수백·수천억의 공공시설물 피해가 대부분이었던 지난날의 풍수해와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폭설피해 규모가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이 정한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만큼 정부의 특단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그동안 추곡수매제 폐지와 쌀협상 국회비준 통과를 비롯 농가부채 증가로 고통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폭설피해까지 당한 농가들의 참담한 심정을 깊이 헤야려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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