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1일(219호) 신년사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제야(除夜)의 종은 108번을 친다. 백팔번뇌를 씻기 위함이다. 자정직전까지 107번을 치다가 정확히 자정이 되면 마지막 한번을 울려 새해를 알린다. 그러면 모든 것은 과거가 된다. 그리고 시작이 된다. 시작과 끝, 범종의 여운은 이처럼 세월을 휘말아가기도 하고 열어놓기도 한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는다. 만감이 교차한다. 농민들의 주검을 먼발치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참담한 심정은 어찌 나 만이 갖는 감정일 수 있으랴.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공분(公憤)을 느끼는 건 아니다. 힘 있는 나라들에 의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꼴이 더 안타깝다. 빗장을 열어젖힐 수밖에 없는 나약한 꼴이 더 억울한 것이다. 심지어 일제 36년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 이라고 우겨대는 일본의 막가파식 건달 행세에도 눈치를 살펴야 하는 꼴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런 절망 속에 나온 ‘황우석의 신화’ 는 국민들에게 한때 희망이고 빛이었다. 월드컵 4강 신화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이자 국민적 자존을 높이는 계기였던 셈이다. 노벨상도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언론에 난도질 당하는 황우석을 국민들은 용서하지 않았다. 급기야 방송광고 중단사태가 벌어지고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국민적 영웅을 무참히 짓밟는 언론의 횡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분연히 나섰다.

행동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국민들도 마음 졸이며 가슴 아파했다. 유사 이래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황우석의 신화’ 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재미없는 세상에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소식은 그동안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큰 위안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희망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국민들이 받아야 하는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난치병 환자에게는 더 없는 허탈감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쩌랴. 설상가상으로 연거푸 밀어닥친 폭설은 농촌에 너무 많은 상처를 안겨줬다. 수년째 투자만 하고 있는 인삼 재배농이며 일부 축산 및 시설하우스 농가들은 재기불능 사태로 몰아넣고 말았다. 이러한 피해가 우리 영암지역에만 무려 4백억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역대 가장 많은 피해규모다. 공공시설물 피해가 대부분이었던 예전의 재난사고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개인의 재산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과 공무원들이 동원돼 가까스로 복구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떠내려간 재산피해는 자못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을유년 한해를 보내면서 잊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들 서로가 괴로워했던 일이 많았기에 그 같은 괴로움을 되풀이해서 겪을 수는 없다는 회한(悔恨)이 어느 때보다 컸던 것 같다.

더불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우리들의 의지와 노력이 어떠했던가도 겸허하게 뒤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보다 인간다워야 하는 삶을 위한 역사적 요청에 혹은 너무 게으르게 대응해 왔지 않나하는 깊은 자성(自省)도 요구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난해 우리 영암에도 서광(曙光)이 비치는 전기를 맞았다.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선정과 함께 영암읍이 소두읍 육성대상지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남악 신도청 시대와 더불어 아름다운 호수를 중심으로 들어서게 될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건설은 영암이 서남해안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할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정부와 투자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지역민들의 결집된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이 생각나고,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가 생각난다” (國亂思良相 家貧思賢妻)라는 옛말이 있다. 병술년 새해를 맞았다. 올해도 새해를 맞아 ‘가난한 집안의 어진 아내’ 이길 자임하며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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