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10일(224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왕소군(王昭君)은 당나라 현종 시절의 절세미녀로 양귀비(楊貴妃)dgj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힌다. 그녀는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궁녀였다. 원제는 후궁들이 많아 일일이 얼굴을 볼 수가 없어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화가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하여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했다. 따라서 후궁들은 뇌물을 주면서 잘 그려주도록 간청했다. 그러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다. 모연수가 그녀의 얼굴을 잘 그려줄 리가 없었다. 때문에 황제는 왕소군을 곁에 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흉노족의 왕 호한야(胡韓耶)가 한나라의 미녀로 왕비 삼기를 청하자, 황제는 추녀로 잘못 알고 있던 왕소군을 그에게 주기로 했다. 왕소군이 흉노로 떠나는 날, 처음 왕소군을 실제 보게 된 황제는 격노하여 모연수를 죽여 버렸다. 졸지에 말도 통하지 않는 흉노의 땅으로 버림받아 떠난 왕소군은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혹자는 “오랑캐 땅인들 화초가 없으랴만,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라고 달리 해석을 하기도 한다. 즉 오랑캐 땅인들 화초가 없으랴만, 정 붙이지 못하는 이역 땅에서 꽃을 대하니, 봄이 되어도 봄날의 설레임이 없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결국 왕소군은 죽어 흉노의 땅에 묻혔는데, 겨울이 되어 흉노 땅의 풀이 모두 시들어도 왕소군의 무덤의 풀만은 사시사철 늘 푸르렀다고 하여 그 무덤을 청총(靑冢)이라고 했다. 한때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春來不似春’ 이 회자되기도 했는데, 3김 중의 한명인 김종필씨가 1980년대 서슬퍼런 군부 독재시절의 위세를 빗대는 말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어쨌든 입춘(立春)을 넘긴지 일주일째 접어들고 있지만 봄기운은 고사하고 찬바람에 휘날리는 눈발에 진저리가 쳐진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혹한이 밀어닥치고 대설주의보에 또다시 긴장의 시간을 보내야 하니 농어촌 사람들에겐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특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겐 한 겨울을 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어서 빨리 새 봄이 오길 학수고대하게 된다. 그런데도 요즘은 계절이 거꾸로 가는가 싶다.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도 너무나 많다.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간에 대한 대재앙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때문에 요즘엔 인간이 떼죽음을 당하는 건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대형참사니 뭐니 하는 것도 이젠 놀라울 것도 없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올해는 경기가 확 풀려 우리 농촌 서민들에게도 웃음을 갖고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국가 경제가 점차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긴 하지만 IMF 이후 수년간 지쳐있는 서민들에겐 좀처럼 맏음이 가질 않는다.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린 처지의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토대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봄은 수없이 오갔지만 봄 같지가 않은 봄을 오랜 세월 지켜보면서 음력의 새해를 맞아 또다시 작은 소망을 마음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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