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17일 (225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엊그제 밸런타인데이에 조그마한 초콜릿 한 상자를 받았다. 딸아이가 아빠의 손에 쥐어준 초콜릿은 값을 떠나 부녀간의 정(情)을 새롭게 했다. 예쁘게 포장된 상자 속에는 8개의 알밤만한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딸아이의 엄마를 통해 전해들은 초콜릿 값은 무려 8천원에 달했다. “요즘 쌀 한가마 값이 얼만데...” 라는 생각에 딸아이의 살가운 마음에도 씁쓸한 감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3세기경 로마에서 황제의 허락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혼시켜줬다가 순교한 사제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발렌타인데이. 언제부턴가 밸런타인데이에 연인은 물론 친구 혹은 가족끼리 초콜릿을 받는 것이 보편화 된 실정을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그 값을 따지면 얼마나 될까. 더구나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밸런타인데이 외에도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초콜릿을 주는 화이트데이, 그리고 1월 14일의 다이어리데이, 12월 14일의 허그(hug)데이까지 매년 기념일이 즐비하고, 만난 지 100일부터 1000일까지 줄줄이 기념일로 묶여 행사(?)를 치르는 청소년을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어쩌다 아이들의 방구석에서 발견된 사탕바구니까지 널부러진 초콜릿은 부모들의 피와 땀이 얼룩진 결정체가 아니겠는가. 그것을 나락(쌀)으로 치자면 과연 얼마나 될까. 손바닥만한 초콜릿이 수천원에 이름을 가정할 때 호남평야의 한 해 농사는 족히 되지 않을까. 물론 계량화 한다는 게 무모한 짓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천덕꾸러기가 돼 버린 농사는 아이들은 물론이요, 어른들까지 스스로 서자(庶子)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초콜릿 대신 쌀로 만든 떡을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다이어리데이, 허그데이, 100일 기념일 또는 무슨 무슨 기념일에 선물한다면 어떨까. 우리의 전통문화를 살리면서 쌀 소비를 촉진하는 이것이야말로 농촌을 살리며, 국가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서구문화를 맹목적으로 쫒아가는 청소년들이나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얄팍한 상혼들이 어우러져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음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심정을 지인(知人)에게 피력하고 발렌타인 대신 ‘떡데이’ (떡먹는 날)를 외쳤더니 공감한 그가 덕담(德談)을 보내왔다. 예로부터 덕담은 원시종교의 언령관념적(言靈觀念的) 심리에서 말(言)에는 영적인 힘이 있어서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면서 말이다. 우스개 소리인 만큼 독자제위께서도 그냥 웃어 넘겨주길 바란다. 명색이 뼈대 있는 점잖은 양반집 집안에 갓 시집온 셋째 막내며느리가 명랑쾌활하고 자유분방한 것 까지는 좋은데 워낙 말을 함부로 해 온 가족이 좌불안석 하던 차에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을 맞이하여 삼형제 부부가 부모님께 차례로 큰절을 하고 먼저 큰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다소곳이 덕담을 올렸다.

아버님! 학 같이 오래오래 무병장수하십시오!” “허허, 학이 200년을 산다는데 그리 살아도 되겠느냐?” “아버님! 200년 아니라 300년을 사시면 더 좋지요 다음 둘째 며느리가 사뿐히 절을 하며 ”아버님! 거북이는 500년을 산다하옵니다. 거북이같이 장수하시와요!” “허허, 참말로 기특한지고” 마침내 셋째 며느리 차례가 되자 무슨 말이 터져 나올까 하고 가족들이 모두 긴장하여 쳐다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셋째 며느리 가라사대 “아버님! 학도 말고 거북이도 말고 거시기처럼만 사세요” 무안한 가족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깜짝 놀란 시아버지 왈 “아가야, 그 무슨 해괴한 소리냐? 거시기라니!” 그러자 셋째 며느리 답하여 가로대 “아버님! 세상에서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것은 예수님 말고는 거시기 뿐인가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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