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6일 (239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물이 있는 곳이 멀면 가까운 곳의 불을 끄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먼 곳에 아무리 좋은 친척이 있다해도 급할 때는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고 했다(李廷壽-北史)

「이웃」을 두고 생긴 잠언이나 명언은 많다. 속담도 많다. 혹자는 친구는 없어도 살아갈 수 있으나 이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도 했다. 또 좋은 담장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했다. 공자(公子)는 군자가 이웃을 택하여 거처를 정하는 것은 환란을 막고자하기 때문이라고 가르쳤다. 우리의 속담에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다. 「세닢 주고 집사고, 천냥주고 이웃산다」는 말이 있다. 이웃사촌에 관한 속담은 외국에도 얼마든지 있다. 이웃이 좋으면 모든 일이 즐겁다(영국). 이웃이 일찍 일어나면 자기도 일찍 일어나게 된다(알바니아).

좋은 저택을 사기보다 좋은 이웃을 얻어라(스페인). 가장 가까운 이웃은 자기의 양친보다 더 값이 있다(몽골). 이들 속담은 모두가 이웃의 중요함을 깨닫게 하고 있다. 이처럼 「이웃」을 강조하는 데는 「상부상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한자의 「隣」은 마을(邑)에서 쌀(米)을 주고받으며 서로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서로 돕는 것이 「이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이웃」이 요즘 선거바람에 슬슬 눈치 보는 사이가 돼버렸다. 입이 있어도 함부로 말을 못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만나는 대상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만남의 장소도 영 거슬려 아예 집에 머물 수밖에 없다. 때론 이중적인 행동도 보여줘야 한다. 입소문이 두렵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와 연고주의에서 아직도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서글픈 선거 문화가 선량한 우리 서민들이 처신하는데 여러 가지 장해를 안겨주고 있다. 40여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는 1개면에서 10여명 안팎의 면의원을 뽑는 선거여서 재미(?)도 없지 않았다. 당선의 첫째 좋은 조건은 씨족(氏族)이었다. 1개 면에서 씨족이 많다는 것은 절대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같은 문중(門中)안에서 후보자가 난립하지 않을 때는 처음부터 당선은 확실한 것이었다. 지금도 선거에서 씨족표(氏族標)의 영향력은 무시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때만 해도 씨족표는 무조건 뭉치는 경향이 많았고, 특히 면내의 주도권을 잡아야겠다는 집단 심리작용이 부채질해서 어떤 때는 면의원 선거가 바로 씨족 다툼과 같은 양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면단위에서는 후보자의 정당추천 따위는 먹혀들 리가 만무했다. 혈연(血緣)이 큰 비중을 차지했고, 그 다음은「선심」이었다. 때문에 막걸리·고무신이 나돌고「돈질」이 많아졌다. 이를테면 타락선거가 횡행했던 것이다.

5·16 군사정권이 지방자치를 폐지시키면서 내세운 구실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같은 선거의 타락상이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곤 하지만 아직도 그 잔재는 여전하다. 깨끗한 선거, 공약으로 경쟁하는 정책선거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의 선거 문화는 아직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가 성숙되고 지방정치의 장을 활짝 열기 위해선 지방선거가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러져야 함은 두 말 할 나위없다. 모두가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입따로 몸따로」가 문제다. 이웃의 미학(美學)이 사라질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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