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31일(제113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춘추시대 진(晉)나라 임금 경공(景公)이 참언에 속아 대부(大夫)인 조동(趙同)과 조괄(趙括)을 죽였다. 그 후 경공이 병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머리를 산발한 귀신이 손자를 죽인 너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도망치다 꿈을 깬 경공이 무당을 부르니, 무당은 경공이 말하기도 전에 조씨 집 조상 혼령의 짓이라 했다. 어찌하면 좋겠는지를 물으니 무당은 “이미 늦었습니다. 금년 햇보리를 먹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결국 경공은 병이 깊어져서 진(秦)나라에 있는 명의를 불러오게 했다. 경공이 다시 꿈을 꾸었다. 병(炳)이 두 사람의 동자로 변하여 서로 말하는 게 보였다. 한 동자가 “지금 오는 의사는 명의니 우리가 다칠까 두렵다. 어디로 도망갈까.” 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한 동자가 “명치의 위, 심장 아래 있으면 그도 어찌 하지 못할 것”이라 하는 게 아닌가. 진나라에 도착한 명의가 경공을 진찰하고 나서 “병이 명치의 위, 심장의 아래에 있어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침을 놓아도 닿지 않고, 약을 먹어도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경공은 곧바로 죽지 않았다. 6월이 되어 햇보리가 익었다. 경공은 햇보리로 밥을 짓게 했다. 그리고 햇보리를 먹어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 무당을 불러 죽여 버렸다. 그리고 나서 햇보리로 지은 밥을 먹기 위해 수저를 들었다. 때마침 배가 불러온 경공은 변소에 갔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그만 빠져 죽고 말았다. 지금 들으면 황당한 얘기지만 재미있는 고사가 아닐 수 없다. 병입고황(病入膏肓. 병이 심장 밑의 고(膏)와 명치 위의 황(肓) 사이에 있다는 뜻의 이 고사성어는 ‘병이 깊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도 손쓰기 어려운 ‘병입고황’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중에서도 정치권의 병입고황은 단연 으뜸이다. 걸핏하면 날치기에 멱살잡이 하던 정치권이 최근에는 SK비자금 사건으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다. 전 청와데 총무비서관 최도술씨의 11억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면서 사냥감을 만난 듯 하이에나처럼 달려들던 한나라당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SK측으로부터 한푼도 받은 것이 없다던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100억원의 돈을 받았다고 시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또다시 특검을 주장하고 있다. 96년 15대 총선때 ‘안풍사건’(국가안전기획부 자금 전용 의혹사건)과 97년 대선때 ’세풍사건(국세청 대선 자금 불법 모금사건)에 연루된 한나라당이나 최근 회계부정과 돈세탁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또 대통령 재신임 폭탄선언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최씨사건과 연관된 현 정부모두가 국민들에겐 비난의 대상이다. 이제 국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치인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정치인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지 않는다. 국민들은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한결같이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완강히 부인하다가 검찰에 불려가서야 이를 시인하는 정치인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에 분개한다.

정치개혁을 들먹이며 그 동안 수없이 기만해왔던 정치인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머리를 흔들어 댄다. 정치의 ‘정’자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는 뜻일 게다. 대통령의 재신임 태풍속에 온 나라가 격동해야 하는 오늘날의 정치풍토,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국민들은 결단코 다시는 속지 않아야 한다. 정치권도 이번 기회에 진정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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