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14일(제115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얼마 전 서울의 강남지역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학생들을 해치겠다는 협박편지와 전화가 잇따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협박편지를 보낸 이는 자신이 지방대 공대를 졸업했는데 취직을 하지 못했다면서 “일류병을 고치려면 강남 8학군 학생을 죽여야 한다”고 했다니 강남주민이 아니더라도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섬뜩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었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6월에는 역시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여대생 납치 살해사건이 일어났고 지난달에도 강남 주택가에서 40대와 60대 여성들의 잇따른 납치·강도 사건이 발생, 이 지역 주민들이 ‘납치공포’에 떨고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여자를 상대로 한 퍽치기나 납치, 날치기 등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범해대상이 주로 강남에 몰리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에서도 강남을 타깃으로 삼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 같은 각종 범죄는 강남에 대한 반(反) 정서의 기류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가진 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얘기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통계상 빈부격차는 많이 줄었다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빈부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지경에 달해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이 거리를 헤매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월 1천만원 이상 저축하는 사람이나 5억원 이상이 든 예금계좌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 각각 6만명대에 달한다고 하지 않는가.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다 부자가 아닐 터이지만 최근 일부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이 갑자기 몇 억씩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느끼는 일반 서민들의 위화감이 ‘반 강남’ 정서를 형성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요즘 정치권은 어떤가. 대선자금 수사로 위기감을 느낀 여야가 정치개혁이라는 오랜 숙젤 다시 꺼내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얼마나 될까. 오히려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가증스러울 정도다. 저마다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방안을 비롯해 선거구제 변경, 지구당 폐지등 갖가지 방안을 내놓으며 정치개혁 의지를 과시하고 있지만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술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국민들을 기만해왔다는 반증으로 정치권의 개혁의지를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 게 문제다. 돌이켜보면 그 동안 얼마나 정치개혁을 그들 스스로 외쳐오고 협상을 되풀이 해 왔는가. 그럼에도 지난 대선에서 수백억대의 각종 비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가고, 이를 고리로 한 재벌과 정치권의 케넥션은 국민들에게 또 한번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외환위기 이후 엄청나게 쏟아 부은 공적자금은 결국 국민들의 혈세가 아닌가. 그 혈세가 부실금융기관에 들어갔고, 그 부실의 원천은 부도덕한 재벌들이 아니던가. 그런 재벌들이 뒷전에서는 비자금을 조성해 수백억대의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아연실색할 뿐이다. 결국 정경유착이 낳은 혜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은 오늘날, 일부 계층은 부동산 투기로 호화 사치생활을 누리고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한탕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는 서민들의 신음소리를 정치권은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정치개혁안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을 살펴보면 아직도 정략적인 발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깨끗한 정치를 위해 정치인 그들의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진정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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