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21일(제116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고사성어에 전거가감(前車可鑑)이란 말이 있다. 앞 수레가 뒷 수레의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이 고사성어는 어떤 일을 할 때 전에 있었던 일을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는 말로 해석된다. 어느덧 입시철이 다가왔다. 그러나 여전히 우울한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얼마 전 서울의 명문대생이 학교공부 따라가기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수능시험을 앞두고 3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수능시험을 앞두고 3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수능시험 직후에도 2명의 여학생이 투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수능시험 철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비극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학벌풍조와 그에 따른 살인적 입시경쟁이 불러 일으킨 ‘구조적 살인’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영암에도 해마다 500명 이상의 학생이 도회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같은 일이 해마다 반복된다면 우리 영암은 머지않아 ‘교육 불모지대’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쩌랴. 교육을 살리는 길이 지역을 살리는 길이건만···. 지방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해주건만 대응에 나서는 정부의 정책이 미덥지 않다. 상대적으로 중앙 집중 현상은 가속도가 더 붙고 있다. 그래서 무한팽창의 결과로 서울은 지금 자기조절능력 자체를 상실하고 있다. 모든 게 서울 중심인 것이다. 정치와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나 교육마저 서울 중심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많은 학부모들은 자녀를 재수·삼수를 시켜서라도 서울 소재 대학으로 보내고자 기를 쓴다. 3류 대학이라도 좋다는 것이다. 미국이 부러운 것은 큰 땅덩어리와 풍요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방 곳곳에 세계적인 대학들이 존재하는 데서 정말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그런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해야만 좋은 직장을 얻고 출세를 하기 때문이다.

지방의 인재들이 모두 도시로, 서울로 빠져나가고 있음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방분권과 지역인재 할당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방분권은 단순한 중앙행정기관의 권한을 지방에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방의 자율적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방분권특별법과 국가균형발전특별법 등 정부의 ‘지방 살리기 3대 특별법안’의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대회가 엊그제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것도 이러한 절박성의 발로다. 특히 각종 국가고시 및 공무원선발시험, 공기업채용 때 지역별 인구비례로 선발하는 지역인재 할당제는 이러한 폐해를 없애 줄 유력한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다. 물론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염려도 있고,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중국은 일찍이 과거(科擧)를 시행하면서 지역별 합격자 수를 정해 두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문과 경제가 발전한 지역에서 과거 합격자가 무더기로 배출되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이를테면 싹쓸이 현상이 나타날 경우 중국 문화가 한정된 지역에만 발전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문화적 동질성과 변경지역으로의 팽창에도 장애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늦게 편입된 운남, 광서, 귀주, 대만 등 변두리 지역에까지 중국문화가 침투되고 중국이 거대한 영토와 문화적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제도의 덕을 톡톡히 누렸던 것이다. 결국 튼튼한 지방을 만들기 위해 지역인재 할당제는 반드시 도입돼야 할 국가적 과제라 여겨진다. 지방이 튼튼해야 서울도 튼튼하고, 나라도 제대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공적 전례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새삼 전거가감의 교훈이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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