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3일(제109호)

▲ 문배근(본사대표이사 발행인)

10월, 어느새 시월이 다가왔다. 지루한 장마와 폭염에 허덕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월이라니 왠지 가슴 한쪽이 휑한 느낌이다. 한 장씩 찢겨나간 달력도 달랑 두 장만 붙어 아침저녁의 쌀쌀한 기운과 함께 스산한 느낌을 더해준다. ‘세월은 나는 화살과 같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가슴팍을 파고드는 허무감을 어찌 할 수 없다. 예전의 시월은 풍요롭고 넉넉했다. 수확의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젠 그런 시월의 넉넉함은 찾아볼 길이 없다. 고된 농사일에도 수확의 기쁨이 있어 지친 몸을 달래곤 했지만 그마저 앗아간 지 오래다. 내리막길도 아닌 벼랑 끝에 놓인 농업의 현실 탓이다. 그들 뿐 만이 아니다. 농업에 종사하지 아니한 사람들도 살기는 매 한가지다. 오랜 경기불황이 그들의 목을 옥죄고 있다. 한결같이 살기가 힘들고 팍팍하다고들 아우성이다. 그렇게 보면 남은 달력 두 장도 얼른 떼어내 버리고 싶어진다. 긴 어둠의 터널을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은 절박감에서 나온 소산일터. 어쩌면 갱 속에 갇힌 광부의 심정이랄까. 최근 국제적으로 망신살을 사고 있는 원정출산도 결코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 주는 원정출산은 결코 가진 자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기회만 주어지면 한국을 탈출하겠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사람도 있겠지만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부류도 많다는 얘기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영암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외국은 아닐지라도 고향을 등지는 서글픈 현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기 까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자식의 교육 문제도 있겠지만 먹고사는 문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결국 마포바지 방귀 새듯 하나 둘 빠져나간 그 자리는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급기야 행정당국이 발 벗고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공무원들의 주거를 강제(?)적으로 제한시키는 고육책을 내놓은 것이다. 지역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내년 선거를 위식, 원격조정에 의한 제스쳐라는 쑤군거림도 들린다. 하지만 그런 말 자체가 무게를 실리지 못한 이유는 지금의 상황이 워낙 바닥세라서 그 상황논리에 묻혀버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주문들 한다. 기대반 우려반 속에 내홍은 그들의 바램은 ‘반짝 행사’가 아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전에도 있었지만 시일이 가면서 유야무야 돼버린 경험 탓이다. 그러나 그것이 항구대책일 수 없다. 단지 임시방편일 뿐이다.
이른바 생활기반이 없고서야 모래성을 쌓는 격에 불과하다. 요즘 농촌들녘을 가보면 농로까지 시멘트 도로로 확확 뚫려 썩 좋아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과연 그 포장도로가 실익이 얼마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앞선다. 투자 가치면에서 그렇고, 나중에 영농환경이 바뀌어 파헤치게 될 경우 이미 투입된 막대한 예산은 고사하고 환경 파괴를 시키게 될 엄청난 규모의 부산물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론 예산이 남아돌아 쓸 곳이 없다면 이해할 만하다. 또 읍내 이곳저곳 뚫리는 도로도 주민들의 생활불편 해소에 다소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먹고사는 일이 급할진대 굳이 시급을 요하지 않는 도로까지 선후를 무시하고 공사를 벌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과거 많은 주민들의 입살에 올랐던 돌탑의 사례에서 보듯···.
물론 뒤늦게나마 지역경제 활로모색에 나선 영암군의 위민(爲民)행정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완급을 요구한다. 비록 갈증 나는 예산이지만 짜임새 있고 치밀한 계획으로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풍요 속의 빈곤을 느껴야 하는 이 계절. 뭔가 신명나는 일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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