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5일(제106호)

▲ 문배근(본사대표이사 발행인)

영국에는 정직에 관한 속담이 많다. 일찍부터 정직한 국민성을 형성해 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하라’고 한 것도 그들의 좌우명이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만 행복 하고 싶거든 결혼을 할 것이며,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집을 지으며, 일생을 편안하게 마치려면 우선 마음을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직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부정과 부도덕이 만연하게 됨은 당연하다. 드러 내놓고 세도(勢道)를 부린 사람은 역사상 많다. 정조때의 홍국영도 그 중 한명이다. 한마디로 세도가로서는 여한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임금 정조로부터 아예 허락(?)을 받고 권세를 휘둘렀다.

홍국영은 정조가 세자로 있을 때부터 그림자 노릇을 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늘 안타까워했다.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세력은 장차 세자가 왕위에 오를 경우 닥쳐올 화(禍)를 두려워했다. 몇 번이나 세자를 해치려 했으나 그때마다 홍국영의 면밀한 계책 때문에 실패했다. 결국 왕위에 오른 정조는 홍국영의 은공을 잊지 않았다. “그대가 擧兵犯關의 大罪만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과인은 이를 탓하지 않으리라···.” 대궐을 범하지 않는 한 어떤 죄를 저질러도 벌하지 않겠다는 임금의 약속을 등에 업은 홍국영은 안타깝게도 방자하고 탐욕스런 언행을 일삼아 백성의 지탄을 받기에 이른다. 소인(小人)의 본색을 드러내서 임금 이외의 어떤 사람도 안중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말로 권력형 비리(勸力型 非理)를 너무 많이 저지른 셈이다. 어느 세상이나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떡심’이 풀리게 된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기(氣)와 맥(脈)이 풀려 버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으뜸으로 삼아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됨은 당연하다. 또한 정직을 모토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게 된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부조리에 대한 무감각 현상이다. 도덕 불감증 시대가 그것이다. 논리에 대한 일관성을 상실한 보통 사람들은 기성 도덕에 대해 반항심까지 갖게 된다. 선악(善惡)에 대한 구별이 모호해졌다고, 스스로 자기정립의 노력을 포기하면서 이 세상에 구세주란 없다고도 생각하기에 이른다. 최근 지방자치 단체장의 비리가 또 도마 위에 올려졌다. 승진인사 대가로 오고간 금품이 만만치 않다. 결국 한 공직자의 죽음을 몰고 온 비리는 모든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떡심 풀리게 만들었다. 본인은 정작 감옥살이를 하게 됐지만···.

해마다 되풀이되는 영암 군의원들의 관광성 해외연수도 시비거리다. 선진국가의 지방자치제를 둘러보고 이를 활용할 가치를 고려한 여행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선진 제국의 지방의원과 지자체를 생각하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일단 나가고 보자’는 몰염치한 행위는 군민을 졸(卒)로 보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최소한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함도 전혀 없는 것 같다. 게다가 무임승차한 부류는 어떤가. 기자가 왜 끼여야 하며, 공무원이 의원들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지역경제가 갈수록 위축되고 군민들은 삶을 걱정하고 있는 판에 혈세를 펑 펑 써가며 외유를 즐기는 그들은 과연 이 시대의 공복(公僕)인가. 군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은 역시 변화를 싫어한다. ‘관행(慣行)’ 이라는 굴레를 퍽이나 편리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집행부에서도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이다. 공생관계에서 비롯된 지혜일터. 이 또한 떡심 풀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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