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6일(제94호)

▲ 문배근(본사대표이사 발행인)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 위기감을 느낀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심정고백’ 형식으로 내밷은 말이다.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에 대해 “오죽했으면 ···”이라는 심정적 동정론과 “그렇다고 대통령이···”라는 혹평이 교차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뭔가 모를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중앙 일간지에 도배되어 쏟아지는 각종 의혹들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또 한때 내노라했던 인사들이 검찰에 불려 다니는가 싶더니 언젠가 포승줄에 묶여 철창신세가 되는 악순환이 이 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한쪽에선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경제를 마비시키는가 싶더니 요즘엔 교육계가 나라를 온통 들쑤셔 놓고 가닥을 못 잡고 있다.

여기에 참여정부의 개혁을 뒷받침해야 할 민주당은 신당창당을 둘러싸고 티격태격 분란만 계속하는 등 여당으로서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어디 이 뿐인가. 곳곳에서 분출되는 집단 이기주의적 행태에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무소신과 나약한 모습도 한몫 거들고 있다. 참여정부가 출범 100일만에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전반이 삐꺽거리면서 정작 가속도가 붙어야 할 개혁 작업은 멈춰서고 경기는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음은 그동안 서민들이 갈구해온 ‘희망 찾기’를 꺽어 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사실 노무현의 선택은 서민들에겐 하나의 희망이었다.

원칙과 소신이 통하고 반칙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서민 대통령 노무현. 그는 대통령 당선까지의 대장정에서 수 십년 동안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낡은 관념들과 허위의식들을 일거에 침몰 시겼다. 때문에 그의 승리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일부 기득권층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뽑았다’는 강한 자부심을 안겨줬다. 그의 당선은 국민들과 함께 ‘희망의 새 대한민국 건설’이라는 과제를 던졌다. 그는 또 아직도 낡은 틀이 온존하는 우리사회에 ‘이제 다시 시작이다’는 메시지도 남겼다. 그런데 참여정부 100일을 맞은 지금 그 ‘희망’들이 조금씩 변색되면서 여기서 저기서 실망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협화음의 혼란 속에 위기의식의 빌로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의 보통사람들은 너무 지쳐있다. 그동안 IMF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일을 당한 서민들은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에 본능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누대에 걸쳐 외침을 당해온 한 많은 민족의 단결력이 이때 유감없이 발휘됐음은 물론이다. 장롱 깊숙이 보관해온 반지도 아낌없이 내놓고 나라 살리기에 모두가 나섰다.

그리고 어서 빨리 그 긴 터널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조금만 참으면 될 것으로 굳게 믿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혹독한 시련을 겪고도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불행한 서민들은 IMF를 겪는 동안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에 더 시달려야 했다.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살인적인 물가고에 허덕여야 했다. 우리 주변의 보통사람들이 ‘희망찾기’에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 희망은 성질 급한 우리 서민드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중국의 고사성어에 병입고황(病入膏肓)이 있다. 병이 심장 밑의 고(膏)와 명치 위의 황(肓) 사이에 있다는 뜻으로 병이 깊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노대통령은 지칠대로 지쳐있는 서민들의 고통을 똑바로 봐야 한다. 병이 더욱 깊어지기 전에 빠른 처방이 필요하다. 서민들에게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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