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30일(제93호)

▲ 문배근(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농협개혁을 둘러싼 중앙회와 지역농협간 갈등이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을 띠면서 농협개혁이 또다시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농협중앙회가 전국 1천366개 지역농협을 900개로 합병하려던 방침을 세웠다가 노조 차원의 거센 반대에 부딪치자 지역조합의 참여 아래 자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진하는 쪽으로 한발짝 물러서 이같은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물론 지역농협의 합병계획이 농협개혁의 전부는 아니다. 단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시작단계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나 하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사실상 농협중앙회가 내놓은 지역농협 합병안도 그렇다. 일련의 과정에서 개혁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선뜻 내키지는 않지만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그동안 개혁에 미적거렸던 농협이 신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개혁방안을 내놓은 데 대해 일부에서는 너무 속이 보이는 행동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우리 국민이 농협개혁에 남다른 관심을 갖는 것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농촌과 농업이 이제는 수입개방과 노령화 등으로 뿌리 채 흔들리는 현실에서 농협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민은 불안정한 경영자다. 시장에서는 약자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통해 단결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농협의 션실은 자조·자립의 농민조직과는 거리가 있다. 우선 조직부터가 너무 기형적이다. 중앙회-광역시·도지역본부-시·군지부(이상 중앙회소속)-지역농협(종전 단위농협)의 4중구조는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고비용 저효율’의 중앙회 중심 구조다. 게다가 중앙회는 신용업무 위주의 사업과 현재 12개에 이르는 자회사의 확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비대화를 꾀해 왔다. 이런 행태는 재벌과 대화를 꾀해 왔다. 이런 행태는 재벌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농협의 가장 큰 문제는 상급조직인 중앙회가 은행 같은 신용사업에 치중, 농산물 유통-생산지도 등 본연의 경제 사업을 소홀히 함으로써 농민과의 괴리가 커져 왔다는 점이다.

농민이익 옹호라는 ‘본업’보다는 돈놀이라는 ‘부업’에 급급했다는 애기다. ‘농협을 위한 농협’이란 비판이 줄기차게 제기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농협중앙회가 지역농협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합병계획을 밝히자 지역농협 노조가 먼저 중앙회 시·군지부 폐지부터 요구하며 단체행동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역농협도 문제점투성이다. 조합장선거의 과열·혼탁·타락현상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직선제이후 나타난 조합장의 독선적 운영과 비전문성도 농협을 농민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주요 요인이다. 지역농협은 농민이 주주이면서 금융(신용업무)과 생산(경제사업)업무가 복합된 고도의 경영기법이 요구되는 주식회사에 비유될 수 있다. 게다가 기업(농업)의 국내외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따라서 회고 경영자(조합장)는 안팎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기민성과 정확한 판단력을 가져야 한다. 주주와 조직원(농협직원)이 신뢰할 수 있는 높은 도덕성도 요구된다. 그래야 기업도, 주주도···

회사원도 살아남을 수 있다. 예의 바르고 조문 잘하며 재력과 친화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누구나 조합장이 되고 단체장이 될 수 없음을 제시해준다. 이런 농협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무시한 채 자율에 맡긴다면 시일만 끌면서 흐지부지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참여정부도 과거 역대정부처럼 정권초기 으름장을 놓는 식에 그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현정부는 실패로 끝난 지난 정부의 과거를 거울삼아 주도면밀한 개혁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농업·농촌현실이 너무 절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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