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16일(제91호)

▲ 문배근(본사 대표이사·발행인)

푸르름이 짙어가는 5월의 한복판. 벌써 5월도 중간쯤에 서 있다. 흔히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왜 하필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을까. 일년이면 열두달이 있고 봄·여름·가을··· 계절도 많은데 말이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그런데 모처럼 나가서 본 야외의 풍경은 그 의문이 금방 풀리는 것 같다. 자연의 오묘한 섭리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면서 말이다. 산허리를 둘러싼 수목과 야생초들은 어느덧 새 삶을 시작하고 있다. 3~4월에 핀 꽃들은 벌써 사라지고 어느 사이엔가 땅의 수분과 기를 품어 세상을 녹색으로 물들였다. 근래 짖궂은 봄장마가 지나간 뒷 모습은 한층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세파에 찌든 민초들도 자연의 그 왕성한 활동을 보면서 새로운 활력소를 얻는다. 열매를 맺기 위해 벌이는 나비와 벌의 분주한 몸놀림은 소생의 기쁨을 안겨준다. 세상에 자연의 신비함을 확인하는 5월은 확실히 ‘화려함’의 상징, 그 여왕임에 틀림없다. 그런 5월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도 잠시뿐. 자연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와 보면 세상 잡일은 우릴 우울하게 만든다.

특히 정치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외면할 순 없다. 정치는 바로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의 ‘잡초론’이 온통 정가를 들끓게 했다. 노대통령이 어버이날인 8일 국민 5백만명에게 보낸 e메일에서 개혁의 발목을 잡는 정치인은 농민이‘잡초’를 뽑는 기분으로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대통령이 밝힌 ‘잡초’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지거나 개혁의 발목을 잡고, 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려 하거나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을 지목했다. 구태정치의 일소를 주장한 이같은 발언은 한나라당과 민주당내 구주류 일부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한나라당은 “막말을 넘어선 정치적 테러”라고 규정, 정치 이슈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민주당내 구주류쪽은 인적 청산을 겨냥한 것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노태통령이 예전에도 강연 등을 통해 수차례 사용했던 표현이며 원론적인 얘기”락 해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잡초론’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연일 뜨거운 공방을 벌이면서 정쟁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신당 창당을 놓고 민주당내계파간 힘 겨루기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최근에는 신당 창당 형식을 둘러싼 민주당의 신·구주류간 세 대결이 본격화하면서 민주당이 사실상 분당의 기로에 접어든 것 같다. 정치적 운명을 건 일전불사의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국민들의 정치적 혐오를 더해주고 있다. 오죽했으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한국의 정치력은 4류라고 말했을까. 지금으로부터 8년전인 1995년 김영삼 정권시절 파문을 일으켰던 발언이지만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정치개혁을 주창하고 나서지만 결국 유야무야되고 마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었다. 김대중 정부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구도를 바꾸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결국 정치개혁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최근 지방의회 의원의 유급직화 추진움직임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이기주의적 행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에 득표기반을 갖고 있는 지방의원들의 비위를 맞추자는 선심성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나라 살림은 어찌됐건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 보호에 혈안이 돼 있음을 보여준다. 노대통령의 잡초론과 신당창당에 반발하는 세력들도 따지고 보면 말로는 개혁을 주창하면서 속으로는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속셈 때문이다. 결국 선량한 곡식에 피해를 주는 잡초는 뽑아낼 수 밖에 없다. 그 몫은 바로 농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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