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13일(제71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고이는 물은 쉽게 썩는다. 흐르는 물은 스스로 정화작용을 하면서 썩지 않는다. 줄기차게 흐르는 산골짜기 물이 항상 맑고 깨끗한 것도 이 같은 이치다. 자연의 생명력이란 늘 새롭게 변화하는 기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곧 굳어져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는 것이며, 변화한다는 사실만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철학자 명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영암은 너무 오랫동안 변화되지 않은 채 꽉 막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새로운 문명의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패러다임이 도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난 1995년 우리나라에서는 실로 50년만에 민선 지방자치제가 부활되어 모든 국민들의 기대와 성원 속에 힘찬 출발을 시작했다. 민선지방자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면 지역주민들에게 질 높은 행정서비스 제공과 지역개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어 모든 분야에서 풍요롭고 복된 삶을 제공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단순히 민원서류를 떼어주고 중앙정부의 위임사무에 의존했던 관선시대와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다. 때문에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산을 운용할 때 낭비와 비효율을 최소화해야 한다. 더구나 열악한 지방재정의 형편을 감안할 때 전체의 공공이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생산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최근 영암군이 의회에 심의 의결을 요구한 예산안 가운데 주민계도지 예산을 보면 도대체 누굴 위한 행정을 펴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계도지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전적 의미는 ‘깨우치고 이끌어 준다’ 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사전적 의미는 순전히 눈속임용이다. 계도지는 애초 군사독재 시절에 출발했다. 정통성이 없던 독재정권이 자신의 치적을 일방적으로 알릴 필요성 때문에 주민들의 혈세로 신문을 구입해 말단행정 조직인 마을의 통반장과 새마을지도자들에게 공찌로 보내졌다.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권력자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진 신문을 정부가 언론사에 급부를 주고 특정인들에게 뿌려졌던 신문이 바로 주민 계도지인 것이다.

이른바 독재시절 권언유착의 고리가 된 신문이 국민의 정부에서도 버젓이 자행돼 왔다. 그러나 최근 수 년 사이 시민사회단체 및 주민들의 거센 저항과 언론계의 자정활동에 힘입어 계도지가 사라지고 있다. 실제 광주·전남 27개 자치단체 가운데 70% 가까운 18곳이 내년도 예산에서 아예 편성치 않았고, 나머지 8개 자치단체도 대폭 줄이거나 현상유지 수준으로 나타나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그나마 계도지 예산을 편성한 자치단체는 공무원직협의회로부터 압력을 받아 단체장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의회에서도 예전과 다른 강경자세를 견지하며 칼자루를 휘두를 태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영암군은 올해 7천100만원을 계도지 예산으로 사용한데 이어 내년에는 오히려 3천400만원이나 늘려 1억 5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놓고 의회의 처분을 바라고 있다. 도대체 주민을 무시한 이 같은 처사는 ‘내 배 째라는 식’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같은 ‘배짱 행정’은 어디서 나온 강심장일까. 신문이 많다고 불평을 하면서 주민의 혈세로 뒷돈을 대주는 꼴이 아이러니컬하다. 지방지가 무려 10여개가 난립하는 언론의 천국 전라도. 필자도 한때 청춘을 불살랐던 곳이긴 하지만 전라도의 이같은 상황은 계도지가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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