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8일(제70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춘추시대 진(秦)에 이은 한(漢)나라는 무제(武帝)때 전성기를 맞는다. 이때 위만조선도 망했는데, 한나라 최대의 적은 북방의 흉노였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그들 때문이었다. 무제는 강온 양면책으로 흉노에 대처했다. 무제의 사신 소무는 흉노에 갔다가 억류되어 북해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후 그의 친구였던 이릉(李陵)도 흉노와 싸우다가 군사를 모두 잃고 항복했다. 그 용맹을 높이 산 흉노의 군왕은 그를 우대했다. 이릉은 소무가 흉노의 땅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항복한 것이 부끄러워 찾아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흉노 군왕은 그를 북해에 보내 주연을 베풀어 소무를 설득하게 했다. 이윽고 이릉은 소무를 찾아가 설득에 나섰다. “흉노 군왕은 나를 보내 자네를 설득하려 하네. 그는 허심탄회하게 자네를 대우하려 하네. 자네는 결코 한나라로 돌아가지 못할 걸세. 이 인적 없는 곳에서 자신을 괴롭힌들 누가 자네의 신의를 알아주겠는가?

내가 흉노를 치러 올 때쯤 자네 어머니가 돌아가셨네. 자네 부인도 재가했다고 하네.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누이동생 둘과 1남 2녀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은데(人生如朝露), 어찌하여 이토록 자신을 괴롭히는가.” 그러나 소무는 끝내 이릉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릉도 그의 굳은 뜻을 알고 돌아갔다. 이릉은 후일 탈출하여 귀향했으나 항복했다고 하여 무제에 의해 중형에 처해졌다. 이를 변호하다 거세의 형을 받아 불구가 된 사람이 ‘사기’를 쓴 사마천이다. 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덧없다는 의미다. 엊그제 이인제씨가 결국 민주당을 탈당했다. 97년 신한국당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신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한 지 5년 만이다.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때 그는 결과에 승복한다는 서약까지 했다. 그러나 경선에서 패배하자마자 바로 대선 독자출마설을 흘리며 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 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때도 그는 중도 포기하면서 백의종군을 다짐했다. 하지만 당초 약속과 달리 후보 교체론과 중부권 신당론 등을 내세우며 당 내분의 한 축이 되었던 인물이다. 물론 그가 현재 노무현 대통령후보와 국민통합 정몽준 대표간 쌍두체제가 정립된 상황에서 향후 민주당내 활로모색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인 이인제씨의 정치유전(流轉)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저급한 정치문화를 또 한번 지켜보는 것 같아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한때 젊고 참신하던 그의 옛 모습은 이젠 찾아볼 길이 없다. 대통령의 꿈을 갖고 있던 정치인이 당의 결정에 두 번이나 불복하고 두 번이나 탈당하면서 끝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볼 때 이릉이 소무를 설득하면서 들려주었던 ‘人生如朝露’ 라는 말이 실감난다. 인생은 아침이슬과 같음에도 신의를 끝까지 지킨 인물이 있는가 하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한 정치인의 인생역정을 보면서 과연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디 이 문제가 이인제씨에 국한된 것이겠는가 마는 모름지기 대통령의 꿈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궁색한 명분을 내세우며 정치인의 생명이랄 수 있는 신의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쳐 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선에 깨끗이 승복했던 정몽준씨에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국민들이 찬사를 보낸 것은 그동안 정치인들이 보여준 추악한 행태탓이리라. 인간 역사의 불행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한 약속을 내팽개쳤을 때 시작돼 왔음을 우린 기억한다. 그 무엇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인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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