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 29일(제69호)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대선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맞설 단일후보가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한나라당 측에선 정권교체라는 호기(好期) 속에 복병(伏兵)을 만난 셈이다. 정치에 식상한 국민들도 31년 만에 맞는 양강 구도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박빙의 승부가 점쳐지고 있는데다 정치개혁에 대한 일말의 기대치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거대 야당의 대권주자 이회창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집중 부각시키는 대목이 하나 있다. ‘법과 질서가 확립된 나라’ 가 바로 그것이다. 이 대목은 국민 모두가 잘 사는 나라, 교육이 올바로 선 나라와 함께 어느 정권이나 내세우던 공약중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이 후보가 강조하고 있는 ‘법과 질서’가 우리들의 마음에 새롭게 와 닿는 것은 우리사회에 언제부턴가 그 영역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권력형 부패척결을 제1의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한나라당의 대선공약은 국민의 정부에 실망한 민초들의 표심을 얻고자 하는 전략적 소산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사실 법과 질서는 우리 모두 스스로가 지키려고 노력할 때 빛을 발하게 된다. 법이란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한 타율적 규범이며, 질서란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한 자율적 규칙이다. 세상일이 나와 남의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이 복잡한 관계를 일정한 ‘룰’을 만들어 함께 지키자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서로 편리하자고 만들어 놓은 룰을 무시하고 편법이 판을 친다. 또 법 자체를 부정하고 법을 어기는 것이 오히려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눈을 돌려 우리가 살고 있는 영암을 들여다보자. 차를 세워두지 않아야 할 곳에 오랫동안 주차해놓고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불편해 하면서도 자신은 버젓이 불법을 일삼는다. 시내에 넘쳐나는 불법 광고물은 어떤가. 각종 현수막이 간선도로 곳곳에 널려 있고 눈에 띄는 기둥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광고물은 영암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주민들의 의식수준은 그렇다 치더라도 행정기관의 이중적 행태는 가관이다. 아름다운 영암을 가꾼답시고 연중 수천만원을 들여 꽃길 조성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한쪽에선 볼썽 사나운 광고물을 거리낌 없이 부쳐대고 있다.

행정기관이 오히려 불법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기초질서 확립’ 운운하며 어깨띠 두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기관장님들의 폼나는(?) 행위가 부끄러울 뿐이다. 시민의식 실종과 함께 선거를 의식한 선심행정이 빚어낸 합작품이 오랫동안 관행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최근 뒷말이 무성한 80억대 하천개보수 공사발주 후유증도 예외는 아니다. 건설경기의 불황 속에 모처럼 터진 대규모 공사인데다 수의계약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느 정도 잡음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에 충실했을 때 행정의 신뢰성은 담보되는 것이다. 원칙과 기준이 수시로 변덕을 부린다면 누가 신뢰를 할 것이며 그에 따를 것인가. 예를 들어 버스를 타려고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새치기 하는 사람을 모른척하고 태워준다면 그 어느 누가 멍청하게 줄 서려고 할 것인가. 기초질서도 일관성 있는 행정행위가 이뤄질 때 제대로 지켜질 수 있다. 관공서 스스로 불법을 저질러 놓고 단속에 나설 때 누가 용인하겠는가. 당연히 저항만 있을 뿐이다. 법과 질서가 확립될 때만이 성숙한 시민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회창 후보의 원칙론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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