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 8일(제66호)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하나의 큰 사고 이면에는 29개의 작은 사고가 있고, 또한 그 같은 작은 사고의 그늘에는 300개의 이상 징후가 있다.” 하인리히 법칙이다. 뒤집어 설명하면 미세한 부분의 이상을 점검하여 작은 사고를 미연에 막아내지 못하면 큰 사고는 필연적이라는 얘기다. 산업재해의 통계적 경험법칙으로 흔히들 인용된다. 머피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 항공사에서 안전대책에 적용되는 계율이기도 하다. 하나의 거대한 사전정비와 점검이 전제된다. 떠있을 때보다 떠있기 전이 더 중요하다. 이때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라는 게 골자다. 다시말해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일은 반드시 잘못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기의 정비작업에 있어서 누군가가 부품을 잘못 조립해 놓으면 그것을 가져다 사용할 가능성은 크다. 그러니까 사고나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일이나 부분의 점검을 소홀히 하는데 있다. 정지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실정이 저질러지는 이면에는 벌써 무수히 작은 실정이 저질러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일찍이 시정하지 못한 아둔함과 방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세상을 바로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을 자꾸만 거두어 쓰면 좋은 정치를 펼쳐 나갈 수가 없다. 시대와 민의를 외면한 채 좁은 생각에서 한사코 몽매한 시대의 철학만을 고집하는 사람을 중용해서는 나라가 밝아질 까닭이 없다.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하인리히와 머피의 법칙은 말해주고 있다. 바야흐로 ‘철새 정국’이 시작됐다. 대선을 한 달 여 앞두고 정치권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활발하다. 철새 정치인들의 거취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특히 정권말기 민주당내 인사들의 발빠른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권에 단맛을 들인 일부 정치인들은 소신과 원칙, 시대적 사명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정권 재창출’ ‘당선 가능성’을 외치며 자신의 합리화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차기 권력의 지형변화를 관찰하며 줄서기, 눈치 보기가 엿보인다. 이른바 차기 선거에서 ‘공천보험’이라도 확실히 얻어 두자는 속셈이 깔려 있다. 정치를 자신의 독과점품목으로 삼고 국민이 바라는 정치개혁은 안중에도 없다.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당의 공식 대선후보의 발목을 잡고 탈당을 감행한 철새 정치인들 못지않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속타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지방선거전 노무현의 그림자라도 밟기를 원하며 ‘사진찍기’와 ‘노무현과 함께 정치개혁’을 외치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김대중 대통령이 실패한 까닭이 있다면 주변 인물 탓이다.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건만 애초부터 잘못 기용된 인물들 때문에 그 업적이 희석되고 폄하되는 비운을 겪고 있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했다. 우리의 어지러운 정치현실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이 말은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시절 합당 또는 분당때마다 ‘시대적 사명’보다는 주로 자기 합리화 차원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즘 이른바 ‘철새 정치인’들에게 이 말보다 더 큰 위안은 없을 듯 싶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차제에 하인리히와 머피의 법칙을 다시한번 곰곰이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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