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25일(제64호)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가난은 흉이 아니다. 자랑할건 못된다해도 흉잡힐 일은 아니다. 어떻게 가난하느냐가 문제다. 게을러서 가난을 면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직업과 관련해서 부자가 될 수 없을 때는 그 같은 가난은 오히려 ‘명예’가 되는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부자가 될 수 없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벼락부자가 된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명예를 수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 된다. 벼슬만하면 어김없이 치부를 하는 풍토가 문제가 된다. 옛날 세상도 아닌데 평생을 장사 일에 바친 사람보다 불과 10년 안의 관직생활을 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나서면 그건 어딘지 잘못되어 있는 사회임에 틀림없다. ‘벼슬길이 곧 돈 모으는 길’ 이라는 생각이 아직까지 우리사회에 남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선해서 씻어내야 할 독소가 아닐 수 없다.

황희 정승이 청빈했다는 건 너무 유명하다. 그 무렵의 유관도 정승벼슬을 지냈건만 동대문 밖의 비가 새는 집에서 살았다. 선조때의 名相 이원익도 그가 죽었을 때 棺값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인조는 문상을 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그 집안의 생활상을 전해 듣고 “入侍 40년에 영의정까지 지낸 터에 겨우 초가 두어 칸 이드란 말이냐!” 하고 눈시울을 적셨다한다. 그런가하면 철종 때의 외척인 安東金氏들의 세도는 팔도뇌물들이 그들의 집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게 했다. 校洞과 寺洞 에 있었던 김좌근, 김병국 등 그들 여섯 權門勢家의 집 앞에는 3백60고을의 뇌물행렬로 언제나 장관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청빈이건 탐욕이건 이 같은 극단의 일들은 물론 봉건왕조때의 일이다. 그렇지만 개명한 지금 세상에도 탐욕의 무리들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일정 직위이상의 공직자는 재산을 공개하도록 한 공직자윤리법도 모두 이 같은 맥락에서 제정됐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최근 전남도와 일선 시·군에서 발주한 도로확포장 공사 등 관급공사의 전자입찰 비리와 관련한 사건전모가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입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도입된 전자입찰 제도가 관련 공무원이 업무상 알아낸 공사예정가를 유출시키거나 입찰자들끼리 담합해 부정행위를 일삼아 온 것으로 드러나 도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전자입찰 제도 자체를 무의미하게 한 사상 초유의 전남도 전자입찰 사건은 규모면에서도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21건에 2백52억원에 달하고 있다.

특히 부정낙찰이 저질러진 시기는 민선 2기말과 3기초반인 지난 5월부터 7월에 집중돼 단체장 선거로 인해 행정의 감시기능이 느슨해진 틈을 노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하면 엊그제는 경기도의 모 단체장이 직무상 취득한 비밀정보를 이용해 1백 20억원대의 부동산 투기를 하고 건설업체로부터 5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검찰에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민선 단체장이 건설업체 등에서 편의제공 명목으로 뇌물을 받는 등 각종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사례는 많았지만 대규모 부동산 투기를 한 사례는 드문 일이다. 이 단체장은 계획대로 투기해 성공했을 경우 3백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렸을 것으로 검찰은 내다봤다. 칠순을 바라보는 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 앞에서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어쨌든 최근에 드러난 이같은 사례는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는 정도인가를 가늠케 하고 있다. 최근 우리 영암지역에선 80억대의 하천개량공사를 수의계약에 의해 일부 발주했거나 발주를 앞두고 있다. 오랫동안 목마름에 시달려왔던 지역건설업계가 군침을 삼키는 건 당연하다. 말썽은 항상 과욕에서 비롯됨을 우린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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