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6일(58호)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맹위를 떨치던 한여름의 복판을 지나 여름의 끝자락에 찾아든 불청객 태풍 ‘루사’는 나약한 인간에게 너무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고 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강렬히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열은 예전 그대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지만 태풍이 휩쓸고 간 생채기는 얼마전 참상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영암지역은 타 지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피해가 많지 않아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농민들의 설움을 그 누가 알아 줄 것인가. 극심한 가뭄을 피해 가까스로 싹을 틔워 일궈놓은 농사가 하루아침에 비바람에 씻겨 보낼 때 그 심정,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잘 모르긴 해도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 아닌가 싶다. 고추와 참깨 등 밭작물은 물론이려니와 배·사과 등 과수농사, 그리고 논농사의 핵심인 쌀농사가 결실을 보기까지는 적당한 일조량을 필요로 한다.
 
바로 그 중요한 시기가 여름 끝 무렵, 가을 초입이라는 생각이다. 쌀은 흰 뜬물이 햇빛을 받아 단단하게 익어가며, 풋풋하던 과일은 제 맛이 들 때가 바로 이 무렵이다. 그래서 가을은 ‘결실의 계절’ 이라 했다. 때문에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때는 수확철인 가을이 아니라 오해려 여름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런데 올 여름은 의외로 장마가 길어진가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태풍이 몰아닥쳐 순식간에 일년 농사를 망쳐놓고 말았다. 순식간에 가족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이재민들의 고통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이번 태풍은 지난 59년 한반도를 강타했던 ‘사라’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한 것이란다. 이 무슨 조화인가. 하느님이 노하셔도 유만부득이지··· 이 모두가 정쟁(廷爭)에 휘말려 싸움질이나 해대는 위정자들 때문이 아닌지 억지 추측도 해본다. 예전에는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왕과 신하들이 자신의 허물로 돌렸다는 데 지금은 그 정반대다. 조선시대 태종은 재해로 좌정승 성석린이 사직을 청하자 모든 재앙이 자신의 부던한 소치라며 사직을 말렸고, 명종도 영의정 상진 등이 “신하들이 제멋대로 방자하게 한 죄로 이런 바람(風)의 이변이 생겼다” 며 체직할 것을 요청하자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 외람되게 신민(臣民)들의 임금이 되었기 때문” 이라며 역시 자신의 허물로 돌렸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 있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새롭게 음미해 볼 대목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이 슬픈 계절에 우리 영암엔 아직도 풀지 못한 걱정거리가 또 하나 있다. 온 세상을 단숨에 삼킬 듯 강풍이 몰아치고 있을 때 삼호면에 있는 삼호중공업 근로자들은 공장가동을 중단한 채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무려 50여 일 간에 이르는 협상에도 불구하고 첨예한 쟁점 몇 가지를 타결 짓지 못하고 급기야 또다시 전면파업이라는 강공수를 두며 일주일째를 맞고 있다. 전남 서남권 경제의 한 축을 이루며 과거 쓰라린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삼호 중공업은 그들만의 회사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영암 지역사람 뿐만 아니라 바닷가를 끼고 있는 지역민 모두의 것이다. 조상대대로 생활터전을 일구며 살아왔던 어민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공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역경제라는 틀 속에 그들이 일궈낼 일은 자명하다. 부도사태로 공장 문을 닫고 가까스로 위탁경영에 의해 재기한 지 얼마인데 또다시 파업이란 말인가. 국가시책이라는 미명하에 황금어장을 내놓고 오늘도 객지에서 떠돌이 생활하며 설움에 겨워 사는 사람들, 그도 아닌 농사꾼들은 올해도 태풍에 꿈도 희망도 잃고 말았다. 그래도 모두가 어려울 때 한줌의 쌀을 모아 전달했던 지역민들의 소중한 마음을 그들은 간직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