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26일(53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전남지역 농민들이 급기야 분을 삭이지 못하고 서울에 입성했다. 도내 최대마늘 주산지인 무안에서는 600여명의 농민이 22대의 전세버스에 나눠 타고 머리띠와 플래카드, 마늘 등을 준비해 22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 마늘 비밀협상 규탄 농민대회’에 참석했다. 함평·고흥·장흥·보성·나주·해남군에서도 600여명의 농민이 상경해 정부를 상대로 마늘협상의 전면 무효화를 촉구했다. 서울 사직공원에서 열린 이날 규탄대회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전국 24개 농민단체 소속 농민 3천여 명 가운데 전남지역 농민이 절반을 차지했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은 “정부는 한중 마늘협상에서 비밀리에 마늘을 팔아먹고 농민생존권을 헐값에 중국 정부에 넘기는 등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쳤다” 고 절규했다.

피를 토해내듯 아우성치는 이들의 심정을 탁상머리에 앉아 있는 정부 고위관리가 얼마나 알 것인가. 사람이 목에 칼을 들이대야만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건 아니다. 농민들이 당장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데 앉아서 당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그동안 수없이 채이고 살아온 농민들의 한과 설움을 대체 위정자와 도시민들이 얼마나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번 ‘마늘사태’를 바라보는 농민의 자식들은 어떠한 심정일까. 서울에서 굳세게 살아가는 도시민들도 예사롭지 않을 것임엔 틀림없다. 그들도 분명 농민의 자식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농민의 자식으로서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심정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일 수 없다. 현 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일궈놓은 정권인데 이 지경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최소한 미리 까발려 놓고 농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책임지는 사람 없고 물러나면 그 뿐인가. 돌이켜 보면 역대정권에 수 십 년간 철저히 소외되면서 버림받은 땅, ‘전라도’로 남지 않기 위해 그 얼마나 몸부림쳤던가. 그런데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가난을 이겨내고자 했지만 가난의 굴레는 아직도 지울 수 없는 게 전라도 사람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 전라도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있다. 과장된 표현일까. 아니다. 단지 말을 아낄 뿐이다. 말해봤자 소용이 없는 짓이니까···. 도무지 이젠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기댈만한 구석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전라도 사람들의 민주당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애정행각(?)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무조건적이었고 막가파식이었다. 그래서 황색 깃발이면 모든 게 통했다. 지금까지도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원님 덕분에 나팔 분’ 인사도 많이 생겨났다. DJ가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리고 97년 재기에 성공해 대통령으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 왔을 때 함께 흘렸던 눈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만큼 DJ는 전라도 사람들의 등불이자 희망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이 어떠한가. 얼마 전에는 총리를 포함한 개각을 단행했다. 평균 10개월에도 못 미치는 장관의 평균수명은 문제가 있다며 자신은 반드시 시정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농수산물 유통문제, 언론개혁, 세제개혁을 통한 부의 분배 등등··· 그러나 역대정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자식의 부패까지도 말이다. 부부싸움도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들 곧잘 말한다. 역으로 애정이 없으면 무관심이다. 전라도 사람들의 DJ와 민주당에 대한 무관심은 애정이 식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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