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12일( 51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단. 언론사에 몸담아 온지 15년만에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그 반대의 입장에 나선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난립된 지방언론사와 그에 따른 불신이 가득한 환경에서 ‘동네신문’을 만든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모두들 만류했다. 고향의 아는 사람은 근심어린 눈길을 보냈다. 그랬다. 조금은 무모하게 덤벼들었다. 너무나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1년은 그렇게 기대보다는 우려 속에 지나갔다. 때문에 창간 1주년을 맞는 필자의 감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인물의 고장이요, 문화와 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묻어나는 영암은 어느 모로 보나 살만한 곳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서가 아니다. 바다가 보고 싶거나 도시의 문화를 즐길라치면 30~40분이면 족하다. 한 시간 이내에 어디고 안 닿는 곳이 없을 정도다. 내륙의 한 복판에서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천연의 아름다운 조각품 월출산이 버티고 있다. 전원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내 고향 영암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고향사람들은 좋다고 못 느낀다. 왜 그럴까.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어렴풋이나마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사람이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 때문이 아닐까. 먹고사는 게 우선 팍팍한데 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너그러운 마음도 역시 여유에서 나온다. 반대로 여유가 없다보니 뒷말이 많다. 서로 질시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리라. 돌아와 살고 싶은 땅, 영암. 비록 고향이 아니더라도 머물고 싶은 땅, 영암. 그래서 최소한 살맛 나는 고장이 될 순 없을까···. 1년전. 언제까지 적자를 감수하며 버텨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뛰어든 데는 나름의 오기(傲氣)가 발동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여유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버지때부터 채이고(빚보증) 살았던 탓이다.

그렇다고 지역의 언론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다른 시·군에 한 두 개쯤 있는 신문도 영암엔 없었다. 그만큼 영암은 언론환경이 척박했다. 게다가 사시(斜視)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격려는 고사하고 뒷말도 무성했다. 때문에 일당백(一當百)의 각오로 나섰지만 의욕이 꺾인 적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좌절할 순 없었다. 비록 언론환경이 척박해 제대로 뿌리내린 지역신문하나 없었지만 그 환경을 스스로 고쳐 보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왜냐하면 그 척박한 언론 환경은 언론사와 언론인의 탓이지 결코 지역민들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풍요속의 빈곤이랄까? 지금도 많은 언론사가 있고 신문이 널려 있지만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기엔 아직도 역부족이다.

다시말해 독자들이 신문을 외면하고 불신한데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암신문의 존재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먹고 사는데 부족해서 오는 불신풍조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영암의 과제다. 그리고 몇몇이 움직이는 구시대적 잔재도 타파해야 한다. 머슴이 상전 노릇하는 게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최소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럴때만이 주민들간 서로 감싸주는 후덕한 인심도 배어 나리라.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대한민국이 통째로 부패되더라도 최소한 우리 영암만은 ‘살맛 나는 고장’이 될 것이다. 영암 신문의 또 다른 존재이유다. 물론 기득권층들은 변화와 개혁을 싫어 한다. 그러나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Slow & Steady)해낼 것이다. 필자 개인적인 오기의 발동도 바로 여기에 있음을 밝혀두며 창간1돌을 맞아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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