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21일(48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전남도청이전 문제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도청이전문제는 신청사가 건립중임에도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하고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전히 휘둘리고 있다. 전남도민들은 아예 뒷전인채 광주시민들의 뜻에 따라 정치권이 ‘콩치고 팥치는 격’ 이다. 도청 주변에 건물이나 상권을 갖고 있는 기득권층의 의사가 마치 광주시민들의 전체 의사인양 제멋대로 악용되고 있음을 볼 때 분노가 치민다. 선거가 끝났지만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 당선자도 여전히 무책임한 정치적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필자는 10여년 전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강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김영삼 정부의 공약사항으로 추진된 전남도청 이전사업은 5.18항쟁의 숭고한 뜻을 받아들여 도청을 옮기고 그곳에 기념관을 세우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당시 도청이전 문제가 구체화되자 각 시·군에서는 도청 유치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지역마다 사활을 건 싸움이 시작됐다.

전남도와 도의회에서는 도청이전본부와 도청이전특별위원회를 각각 구성하고 차질없는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의 광주·전남발전연구원의 전신인 전남발전연구원에 도청후보지에 대한 용역작업이 맡겨졌다. 당시 지방일간지 정치부 기자로 전남도의회를 출입했던 필자는 전남도청이전 후보지가 지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만큼 노심초사 특종을 낚아챌 욕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차에 용역결과 발표가 임박한 시점에서 5자 회담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됐다. 도청 인근 한정식 집에서의 모임은 도청후보지 용역결과에 대한 최종 보고회 자리였던 것이다. 이 모임에는 전남도에서 도지사와 도청이전본부장, 도의회에서 의장과 도청이전특별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용역기관인 전남발전연구원의 연구실장 등 5명이 자리했다. 이 비밀회동 사실을 접한 필자는 가슴을 조여가며 오찬 회동이 끝나길 기다렸다. 방망이질 해대는 가슴을 억누르고 원고마감시간 이전에 가까스로 용역결과를 제보자로부터 입수할 수 있었다. 기사를 넘기고 난 그때의 심정은 지금도 짜릿한 순간이었다.

전 도민들의 최대 관심사였던만큼 도청이전 후보지에 대한 최종 용역결과 소식은 단연 특종감이었기 때문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요” 라며 외진 대나무 밭에 숨어 들어가 외쳐댔던 이발사의 마음을 그때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결국 필자에 의해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에 대서특필된 도청이전 후보지의 보도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유력후보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주민들은 아침 신문을 접하고 도청에 쳐들어가겠다고 위협하는 등 난리였다. 각 지역의 도의원들은 주민들의 압력에 정치생명을 내걸 정도였고, 주민들 역시 도청유치를 계기로 지역발전의 새로운 전기로 삼고자 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급기야 전남도에서는 각 시·군에 긴급 전문을 내려 보내 “오늘 조간신문에 난 도청후보지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며 무마에 나섰다. 이로 인해 결국 당초 발표 시기를 수개월 넘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도청후보지는 완전히 순서가 뒤바뀌어 발표됐다. 당초 7순위 정도에 머물렀던 무안군 삼향면 후보지가 1순위로 올라 최종 후보지로 전격 발표됐던 것이다.

최소한 1·2순위를 복수로 추천해 전남도의회에 상정해야 함에도 그 절차는 깡그리 무시됐다. 그리고 도의회에 상정된 단일 후보지는 일부 도의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의원들의 묵인 속에 승인절차를 끝내고 말았다. 야당 없는 일당의 횡포를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이는 지금도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도민들의 접근성도 떨어지고 상습 침수지역으로 고비용이 드는 등 어느 모로 보나 후순위에 밀려나 있던 곳이 1순위로 올라 선택의 여지없이 몰아 부쳐진 도청이전사업, 결국 단추는 이때부터 잘못 끼워졌다. 역사는 언젠가 그 진실을 밝혀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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