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 12일 (38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전북 순창. 순창은 덕유산에서 뻗어내린 노령산맥이 호남평야로 달려가는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내장산과 인접하고 있으며, 군립공원으로 강천산이 있다. 전라북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고장으로 전라북도라고 하지만 도청 소재지 전주보다 광주가 더 가까워 남도 물을 먹은 이가 더 많은 지역, 무주·진안·장수·임실과 함께 지리산·덕유산 자락의 대표적인 산간오지가 바로 순창이다. 한마디로 지독한 낙후지역인 것이다. 그러나 한번 낙후지역은 영원한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순창에 꿈을 심는 공무원과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지 순창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지방의 국제화’ 란 얘기가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국제교류라고 하면 해외 지방자치단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단체장이 다녀오고 공무원 몇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정도가 고작이던 시절이었다. 이때 ‘지방의 국제와’ ‘글로벌 순창’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순창 국제화연구회’라는 단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단체가 있기까지는 임재호라는 한 공무원이 있었다. 순창군에 근무하는 40대 중반의 이 평범한 공무원은 ‘진정한 국제화에 대비하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참 고민했다. 궁리 끝에 교사·주부·한의사·언론인·농민·농협직원 등 지역의 젊은이 30여명을 모아 ‘순창국제화연구회’ 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98년 2월 정식 출범한 이 연구회는 첫 사업으로 ‘외국어 사랑방’을 개설했다. 당시 순창에는 외국어학원 하나 없었고, 외국어학원이 있는 광주까지 40분, 전주까지는 50분이 걸리는 형편이었다. 처음으로 일본어와 중국어 강좌를 개설하자 지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2차적으로 돈 적게 들이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홈스테이’를 생각해냈다. 99년 8월 처음으로 일본에서 청소년 홈스테이단이 순창을 방문했고, 순창의 청소년들이 일본에 다시 홈스테이를 갔다. 이후에도 계속 국제화연구회원들의 인솔하에 순창의 농악단이 일본을 방문해 홈스테이를 하며 공연을 했다. 순창고추장 홍보에도 나서 일본 현지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순창국제화연구회의 국제교류사업은 지금까지 수없이 이뤄지고 있다.

순창과 같은 오지에 외국의 청소년들이 뛰어 논다고 생각해 보라! 이것이야 말로 주민들에게 변화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미래의 주인공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교류사업도 주목되고 있다. 그동안 순창과 일본을 다녀간 청소년만도 양쪽에서 각각 100여명이 넘는다. 어린시절의 좋은 기억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늘 가슴속에 남아있게 된다는 점에서 청소년 교류는 잠재적 팬을 육성하는 의미가 크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자녀문제에 관심이 없을까마는 일본이나 우리나라 만큼 유별난 곳도 드물다. 때문에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이고 나아가 부모들이 속한 단체나 지역사회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 부수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지방의 국제화를 순수 민간단체가 주축이 되어 주민들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순창. 산간오지 순창을 우리가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급변하는 시대, 지역의 진정한 변화는 주민들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주민들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함께 풀어 나가고자 할 때 언제까지 낙후지역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왕인문화축제때 보여준 전 공무원의 헌신적인 모습은 높이 살만 하다. 또 최근 창립총회를 계기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영암읍 상가번영회의 활동 또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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