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 5일(37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화사한 봄날이다. 따사로이 내리쬐는 봄볕과 함께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며 개나리꽃이 중년에 접어든 남성의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그래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욕망은 여성들만이 갖는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또 각종 축제의 물결은 광주·전남지역 곳곳에서 넘실대고 있다. 올해로 네 번째 맞는 광주비엔날레가 90일간의 대장정에 올랐고, 목포와 여수에서는 개나리와 진달래를 소재로 한 꽃 축제가 열려 상춘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우리 영암지역에서도 어느덧 벚꽃이 만개한 가운데 왕인문화축제 행사가 코앞에 다가왔다. 곳곳에 널려진 현수막이 축제무드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덩달아 마음이 바빠진다. 여기에다 4월에 접어들면서 선거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3일 여수시를 시작으로 민주당 기초단체장 후보경선이 본격 이뤄지면서 들뜬 분위기가 역력하다. 긴 겨울을 지난 후 맞는 봄은 이래저래 싱숭생숭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 좋은 봄날에 농촌구석 한켠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무 주산단지인 시종·도포·신북 등 영암지역 무 생산농가들이 무를 잇따라 폐기처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폭락으로 출하를 못한 무를 겨우내 저장해 놓고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렸으나 최근들어 가격은 고사하고 판로마저 막혀버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저장해 놓을 수만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봄이 찾아오면서 후작물을 재배해야 하는데다 저장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갈라져 시장에 내다 팔아봐야 오히려 손해를 더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박하던 셈치고 돈과 시간을 들여 저장해둔 무가 손해를 더 가져다 준 셈이 됐다. 가격폭락에 판로마저 막혀버리게 된 원인은 모 대학교수가 발표한 암발병설이 원인이 됐다. 자식 키우듯 애써 가꾼 무를 트랙터로 갈아엎어야 하는 농부들의 심정. 이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봄 햇살을 받으며 희망의 씨를 뿌려야 할 농촌들녘에 농부들의 한숨만이 가득하다. 힘차게 울려야 할 트랙터의 엔진소리도 이젠 지쳐있다. 또 씨를 뿌려본들 본전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다. 심을 작목도 없기는 매 한가지다. 그렇다고 손을 놀릴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가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대학교수를 원망도 해보지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과잉생산해서 망하고, 재해로 망하고, 중간상인의 농간에 망하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대학교수의 무책임한 입놀림에 망하다니··· 허구헌날 채이는 농사꾼의 신세, 이젠 쌀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 됐으니 그들의 마음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농수산물 유통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농어업인들이 마음놓고 생산에 전념할 수 있겠다던 대통령의 단호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건만··· 결국 그 公約은 한낱 公約으로 끝나 버린 채 빗장은 더욱 풀려 도시의 대형마트엔 중국산 누룽지까지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이 봄날, 선거꾼들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코빼기 한번 볼 수 없었던 도의원 나리들도 요즘 부쩍 눈에 뛴다. 용케도 어떻게 알았는지 몇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 그들의 번지르한 모습은 예외없이 나타난다. 그리고는 목청을 높인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앞으로 더욱더 분골쇄신하겠으니 한번만 더 밀어달라고. 그래서 꼭 잘 살도록 하겠다고. 글자 그대로는 아니겠으되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도박농사 하듯이 우린 또 그들에게 4년간의 세월을 도박하게 될 것임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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