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1일(32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얼마전의 일이다. 신문이 배달된 후 독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 안면이 있던 이독자는 한동안 뜸했던 터라 우선 반가운 마음에 안부 먼저 전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안부전화에 대충 응대한 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영암신문에 “某 선거기사가 나왔느냐” 고 물었다. 그리고 “영암신문이 ⨉⨉를 두 번 죽였다” 고 했다. 다짜고짜 신문이 ⨉⨉를 두 번씩이나 죽였다는 말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영암신문이 사람을 두 번 죽이다니··· 어안이 벙벙해 한참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그의 진의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가 오랜만에 전화를 한 목적도 비로서 알았다. 내용인즉, 그날 영암신문에 某 선거기사가 나갔는데 승자와 패자의 득표결과를 상세히 보도함으로써 패자에게 두 번씩이나 죽인 꼴이 됐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황당했다. 언론사에 몸담은 지 15년여의 세월동안 이 같은 항의(?)성 전화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기자와 데스크 시절을 통해 숱한 선거기사를 취급했지만 엄연한 선거결과에 대한 보도내용을 놓고 전화하는 독자를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터라 통화를 끝내고도 한동안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됐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선거기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1단짜리의 짤막한 내용에 득표수가 기록돼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에선 이미 알려진 내용이고 비판기사도 아닌 뉴스 그 자체가 그의 말대로 그 분(패자)에게 그토록 상처를 입혔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상당시간이 흘러 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이 패자의 한 측근이라면 나중에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당사자인 셈이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패자의 한 식구였다.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그의 음성은 이미 흥분된 상태였다. 그러나 몹시 자제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자세히 보도를 해 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미 몇 시간 전 그와 관련된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그이 ‘고맙다’ 는 전화는 다분히 원망과 항의가 짙게 배어나 있었다.

평소 불우이웃 돕기에 헌신적이었던 그의 태도에 비추어 직접 걸려온 전화는 또다시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봉사활동에 열성적이었던 만큼 사적인 일에도 마음을 비우고 살 것이라는 기대치가 무너지면서 이내 실망감으로 번졌다. 물론 그 보도로 인해 그 가족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스타일을 구겼다면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각오없이 선거에 나섰다면 그 또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선거에 졌다고 해서 그들이 쌓아온 명예와 도덕성에 상처를 입힌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 그가 자리에 연연해 선거에 나섰던 것도 아님은 이미 지역에서는 알려진 사실이다. 더불어 그 자리는 명예직으로서 봉사하던 곳이 아닌가. 하물며 선거에 졌다고 해서, 그리고 몇일 후 보도가 나갔다고 해서 감추어질 일이 새로 불거지는 그런 사안은 아니잖는가. 따라서 지나치게 패배의식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주변의 ‘립 서비스’ 에 안주하기 보다는 스스로 당찬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이 사심이 없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할 수도 있을 것이므로. 그렇지 않고 역으로 생각하면 ‘나 아니면 안 된다’ 는 말이 아닌가. 조그마한 동네 선거에서 정말 사심 없이, 그것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축제분위기에서 선거를 치를 수는 없는 것일까. 승자는 패자에게,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와 위로를 보내면서···. 그런데 오히려 주변사람들이 위로하는 척하며, 부추기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거듭 밝히지만 지역의 조그마한 선거에 대해 기사를 내보낸 것은 영암지역에 국한된 ‘동네신문’ 이기 때문이고, 상세한 표결결과도 보도의 기본원칙이라는 점에서 별다른 이의가 있을 순 없다. 때문에 누구를 치켜 올리고, 또다른 누구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정말 그 분의 체면을 구겼다면 지면을 통해 거듭 사죄드리고자 한다. 어쨌든 비뚤어진 우리 선거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못내 떨쳐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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